묵상노트

177주일 | THANKS TO GOD!(시37.22-28)

177주일 | 37.22-28

THANKS TO GOD!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 40년을 통일왕국을 다스린다. 본문 중 내가 늙기까지”(25a)로 봐 아마도 인생후반전인 60세를 전후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는 간증이라 할 수 있는 말씀이다.

 

    시인은 인생을 두 부류로 나눈다.

    ❶ 의인(성도, 주의 복을 받은 자; )

        → 명가(名家):영원히 보호받으나

    ❷ 악인(주의 저주를 받은 자; )

        → 멸문(滅門):끊어지리로다

  

[1]

먼저 다윗은 자신을 존재됨을 하나님 앞에서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복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받는 자다(22a). 누구에게인가? 하나님께로 부터다. 그렇다면 복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의인답게, 성도답게 산다할지라도 그것이나 그것으로부터 복이 만들어지고 또 오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자손으로 이어지는 후대의 복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이다. 다윗은 이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정직하게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에는 자수성가(自手成家)란 없다. 있다면 신수성가(神手成家)가 있을 뿐이다. 인간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자신이 얻고자 하는 복을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이 곧 신이다. 신은 무용하다. 왜 그런가? 인간이 신이 할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럼 뭐하려고 신이 고고한 신으로 존재하고 살아가지 인간이 되어 그 쌩 개고생을 해 가며 복을 만들어 가는가. 그냥 복에서 복으로 직행하면 될 것 아닌가. 인간이 곧 신이라면 말이다.

 

[2]

한편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26a)며 사는 균형 잡힌 의인()으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의 노정에 넘어지”(24a)는 일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26a절처럼 사는 게 의인인 것도 맞고, 그렇게 살아도 넘어지는 좌절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벨런스를 잃곤 한다. 의인으로 살면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만 꼬인다.

자신의 전 삶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자에게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그 정도는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자신도 뭔가를 했으니까 하나님도 그런 자신에게 뭔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위 인간의 공로사상에 깊숙하게 빠져있을 때 반복적으로 발행하는 아주 나쁜 습관이다. 기독교의 무속화다.

*아브라함처럼 살아도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려야 한다.

*모세처럼 살아도 40년 광야생활처럼 늘 백성들로부터 불평을 듣고 살아야 한다.

*스데반처럼 성령충만하고 설교자로 부름 받았어도 돌에 맞아 순교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어도 고난을 받아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

 

[3]

하나님은 당신이 인정하는 의인스럽게 사는 복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그의 인생의 노정에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않으신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24)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신다. 왜 그런가? 넘어지는 것은 의인()이지만 완전히 실패하지 않도록 붙드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24b).

*요셉처럼 노예, , 가정총무, 감옥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과 풀무불에 던져지는 시련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세례 요한처럼 목이 잘려 순교하는 죽음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바울처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오늘 다윗의 간증을 들려주시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로 너의 인생을 그렇게 드리며 살라. 이처럼 사는 것은 넘어지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게 아니다. 의인으로 살아도 넘어지고, 휘청거리고, 고난과 눈물이 있다. 그러나, 진정 그러나다. 삶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며 롤러코스트를 탄 것처럼 끊임없이 흔들릴지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달려가라. 그리하면 너는 물론 너의 후손에게까지 주의 복을 받는 자의 영광을 영원히 허락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다.

다윗이 그러했다. 그러기에 다윗은 인생 노년에 이 시편에 자신의 인생을 간증한다. 언젠가 우리도 이 말씀을 간증케 하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기에 지금 비록 넘어졌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로 서 보자. 하나님은 이를 위해 오늘도 예배자로 부르셔서 말씀하신다.

 

내 삶에 하나님이 들어와 있음이 기적이다.

오늘은 물론 어제와 내일을 하나님과 연결해 읽어내고 바라볼 수 있음이 또한 기적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든 붙들고, 씨름하고, 땀 흘리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달랴온 것 같은데 지나고서 오늘에 와 보니 이게 다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면 지금 이보다 더 큰 감사와 은혜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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