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7수요 | 말4.1-6
말라기(Malachi): 여섯 논쟁들
바른 제사마저도 찾기 어려운 때(1.6-2.9)가 배경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졌으며(2.10), 잡혼(2.11-16), 그리고 십일조‘도’ 드리지 않는 참담함이 온 이스라엘을 덥고 있다(3.6-12). 설상가상으로 종교적 회의주의까지 밀려 들어왔다(3.13-15). 구약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참담한 암흑이다. 그러니 문을 열자마자 ‘경고’(1.1)다. 그래서 말라기(‘여호와의 사자’)의 분위기는 좀 슬프다.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한 시기는 파사의 ‘총독’(1.8), 스룹바벨 ‘성전’(1.10)이라고 본다면 BC 516년 이후일 것으로 보인다.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한 기쁨도 잠시, 점차 무너져 내려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여섯 논쟁들(1.2-4.3)
하나님이 이야기하면 이스라엘은 반론(이의)을 제기한다. 그러면 다시 하나님이 이를 제 반박하시는 방식으로 논쟁이 진행된다. 이때가 성전건축 이후, 그러니까 성전을 재건하면 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었다. 이러한 때에 백성들의 모습이 말라기에 그려져 있다. 과연 하나님의 대답은 어떻게 이어질까.
1. 이스라엘 vs 에돔(1.2-5): 사랑을 거부하다.
야곱: ‘사랑하였고’
에서(에돔): ‘미워하였으며’
하나님은 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심판이 에돔의 몫이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신다.
2. 제사장 클리닉(1.6-2.9): 부패하다.
“내게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6a)
“우리가 어떻게 …”(6b,7a)
제사장들의 죄에 대한 고발(6-8)과 심판이 선고된다. 성전은 재건되었고, 제사도 행해지고 있다(7-10, 3.1,8). 그럼에도 제사장마저 무너져 있다면(1.6-2.9) 당시 유다 백성들의 영적 황무함은 예측 가능하다. 하나님은 이처럼 형식적으로 적당히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으시겠다 하신다(9-10):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10a)
3. 공동체 클리닉(2.10-16): 잡혼하다.
우상숭배에 무감각해지자 아내를 버리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은 이들의 죄행(罪行)에 대해 증인이시자 심판자이시다(14). 한편 잡혼은 이미 한 결혼을 깨는 이혼이 전제되고 있는데(16), 하나님이 이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남녀 모두가 다 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10).
4. 심판 선고(2.17-3.6) - 고소장(2.17)
하나님은 심판주(3.2-5)이신 메시야를 보내셔서 당신의 공평과 공의를 드러내실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 앞에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회개다(3.1-5).
5. 구원 선포(3.7-12): 십일조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7a)
“우리가 어떻게 …”(7b, 8b)
하나님에 대한 의무 중 하나를 예로 들어서 선지자는 저들의 죄를 고발한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다(8-9). 이는 하나님을 공경치 않기 때문이다. 십일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도’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10). 이렇듯 선지자는 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것이라‘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게 되기를 촉구하고 있다(11-12).
6. 종말론적 심판(3.13-4.3): 의인 vs 악인
신앙생활의 회의에 빠진 자들이 있다(13-15). 많은 경우 신앙이 혼돈스럽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인간 편에서 정의하려고 할 때 시작된다. 하지만 과연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2.17b)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인과론적(因果論的)으로 측정 가능한가. 즉, 결과만 좋으면 상관없는 식인가? 이것이 말라기 시대 사람들이 던진 신앙(신학)적 질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알아야 할 분명한 사실(진리)은 이런 혼돈과 혼미스러움이 끝나는, 즉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멸망이 집행될 날이 온다는 점이다(3.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