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401주일 |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14).

1401주일 | 14.1-14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신앙은 위기의 때를 만나면 비로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드러난다. 지금 앞은 홍해요 뒤는 바로와 그의 군사들을 보고 있는 이스라엘(모세)이 등장한다. 이들의 신앙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본즉’(10), ‘보라’(13)라는 단어에서도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도, 그리고 애굽의 군사들 또한 모두가 다 보고 있는 홍해대첩이다. 동일한 사건과 시공간 속에서, 이들은 모두 다 같은 으로 보고 있는데, 문제는 그 본 것이 너무너무 서로 달랐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이러한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이스라엘 백성들: 세상을 보면 만족함이 없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바로와 그 군사들이 이스라엘 뒤를 쫓아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작 보아야 할 것은 안 보고, 안 봐야 할 것을 보았다. 그 결과, 바로가 가까이 오는 것이 눈을 들어오자 심히 두려워하여”(10b) 한다. 이것은 세상 앞에 선 인간 실존의 한 단면이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시련(문제, 환란, 고난)을 만날 때 이처럼 반응을 보일 때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처럼 가장 먼저 대면하는 것은 다름 아닌 두려움이다. 불신앙은 이처럼 두려움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버린다. 이는 하나님과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진짜 보아야 할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되자, 그러자 보지 않아야 할 바로라는 세상이 보인 것이다.

 

 

모 세: 하나님 쪽으로 바라보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모세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러자 모세는 바로와 그 군대만을 볼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세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홍해와 바로 그 사이에서 역사하시며, 이스라엘을 도우시며,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을 향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능력이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3a)

그러나 애굽의 군사만을 보면 11-12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절망하게 된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었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시선이자 말씀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세상의 세력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13b) 그렇다면 애굽, 그러니까 세상(문제, 시련, 환란, 위기)과 바로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바로라는 헛된 실상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

 

하나님만 보여야 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보는 시선을 놓치고서 정신없이 떨다가는 정작 하나님이 일하시는 능력과 역사를 보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가만히 있을지니라!”(14b) 아멘이다. 정말이다. 가만히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보라!’ 하신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홍해와 애굽의 군사들을 멸하시는가를 보라!’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네 2025년이라는 인생행로 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대한민국을 어떻게, 무엇으로 인도해 가시는가를 보라!’ 하신다. 그러니 이처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며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기적이다. 순간 순간이 다 기적인 것이다. 모세처럼 하나님을 보고, 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또한 자신을 보고, 또한 마귀를 대적하며 살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축복한다.

 

출애굽은 했으나, ‘출애굽 그 이후를 감당할 믿음은 아직 없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상이다. 오늘 식으로 말하면 교리적인 구원은 받았을지 모르겠으나 그 구원 안에서 누려야 할 풍성한 삶이라는 생활적인 구원에는 아직 이르지 않는다. 하나님을 일하심을 볼 수 있는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 이게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옛 성품(생각, 행동)이 그대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라는 헛된 피난처 안으로 숨는다.

예수는 믿었으나 여전히 세상 방정식대로 살아가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평안할 때는 그저 그런대로 믿으며 살아가는 것 같은데 앞은 홍해요 뒤는 애굽의 군사들인 것과 같은 시련(환란, 고난)의 현장이 시작되는 때를 만나면 처음에는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고 입으로는 그래도 찬양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어려워지고 그 어려움이 길어지면 구속한 주는 간 곳 없고 세상과 나만 보이도다.’라는 옛 생활로 되돌아가 버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고질병 쪽으로 흔들리며 넘어지는 것이다.

,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르게 이처럼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설교(고백)할 수 있었을까. 모세가 다를 수 있는 것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출애굽기 조금 앞으로 가면 힌트가 있다. 먼저 애굽의 10 재앙이다.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애굽의 바로에게 재앙을 행하셨다. 모세는 그 하나님만 믿었고, 이어지는 다른 재앙 선언 또한 믿음으로 나아가면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선조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약속하셨고(15.12-21), 이제 그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인도(성취)하시겠다 하셨다. 10 재앙의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이시라면, 아브라함과의 언약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모세는 믿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을 향한 신뢰, 곧 믿음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13-14절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역시 지금 걸어가는 인생행로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신앙이 아니라 모세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보면 실망스럽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수준과 못남과 상관없이 당신의 자비함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용납해 주시는 분이시다. 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된 것이 우리의 인생이었다. 그것들이 쌓여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

인생의 홍해는 이렇게 건너는 것이다. 세상과 바로는 이렇게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홍해보다 크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바로와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다. 이처럼 2025년 한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며 걸어가는 은혜와 복이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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