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새벽 | 시146.1-10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
할렐루야 시편이다(146-150편).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할렐루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여호와가 영원히 다스리시는 거기에 소망을 두는 자를 향해 이 시편의 복을 약속하신다. 시인은 ‘귀인들’(인생, 3-4)이 아니라 하나님을 ‘평생에’(2) 찬양하고 찬송하리라 고백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인생은 끊어지고 소멸하나(4), 하나님은 ‘영원히 … 대대로’(10)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귀인들을 …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3).
이들은 ‘도울 힘이 없는’ 그림자와 같은 자들이다. 곧 끊어지며 소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렐루야 밖으로 겉도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인생을 따라 움직인다. 비극이다. 이들에게는 결코 할렐루야가 메아리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이들은 누구인가. ‘악인들’이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아서다. 오히려 사람을 의지해서다.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눈물의 빵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과 형편 중에 누구에게나 두 갈래 인생길이 놓여있다. 이때가 무너지고, 절망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며 인생을 의지할 때가 아니라 진실로 도우시는 자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야곱의 하나님을 도움으로 삼으라(5-10).
하나님은 7절의 ‘억눌린 사람들’, ‘주린 자들’, ‘갇힌 자들’에게, 8절의 ‘맹인들’, ‘비굴한 자들’, ‘의인들’에게, 그리고 9절의 구약의 3대 가난한 자들(나그네, 고아, 과부)을 지키시며 보호하시며 붙드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왜 그러시는가? 저들이 7-9절의 상황과 형편 중에서도 4-5절이 아닌,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과 소망으로 삼는 쪽으로 자신들의 인생행로를 잡았다. 얼마든지 ‘귀인들’과 ‘인생’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며 사람들 쪽으로 저들의 인생 버팀목을 잡았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