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413주일 | 향유 한 옥합을 주께 드린 여인처럼!(마26.1-16)

1413주일 | 26.1-16

향유 한 옥합을 주께 드린 여인처럼!

 

     [예수님의 수난예고]

     ①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16.21)

     ② 인자가 장차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17.22-23)

     ③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20.17-19)

     ④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2)

 

 

네 번째 수난예고(1-2)

음모와 배반(3-5,13-16)

 

예수님은 거듭해서 네 번에 걸쳐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1-2; 16.21, 17.22-23, 20.17-19) 오셨음을 말씀하신다. 그만큼 중요해서 그렇다. 그러니까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얘기다. 그럼 왜 죽으시는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서다. 이렇듯 주님은 십자가로 가는 길을 이처럼 한 번 더 당당하게 밝히신다. 벌써 네 번째다.

바로 그때에’(3a) 정반대 되는 하나의 음모가 진행된다. [1] 먼저, 놀랍게도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모여 흉계를 꾸미며 주님을 잡아 죽이려고 의논한다(3-4).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열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3.16)고 하시는데, 이에 반해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이들은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 하는 일이 무엇인가. 통탄스럽게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는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놀라운 것은 민란이 날까”(5)라며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질에서 떠나니 사람을 두려워하며 이렇듯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며 살아간다. 참으로 가련한 인생들이 아닐 수 없다.

[2] 또한, 배반과 음모는 열두 제자들에게까지 침투한다(8). 놀랍다. 예수님과 3년을 동거동락(同居同樂)하였음에도, 무엇보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과 표적(기적)을 보면서 제자다움을 향한 모든 훈련을 다 통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3] 더더욱 가룟 유다는 이 모든 하늘의 맛나를 헌신짝처럼 버린다. 겨우 은 삼십에 스승을 팔아버리는 것으로 말이다(14-16).

 

 

한 여자, 향유 한 옥합(6-13)

 

그런데 바로 이 두 사이에 향내 가득한 집이 한 여자와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모두가 다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제자들까지도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8-9)라며 분개한다. 공생애의 절정인 십자가를 앞에 둔 마지막 한 주간 안으로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핵심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들까지도 자기들 마음 가는 대로 언행하고 있다.

이처럼 안팎으로 흔들리는 중이다. 이러한 때에 한 여자가 등장한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7) 부은 것이다. 놀랍게도 그 값어치가 무려 300 데나리온(14.5), 그러니까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무려 노동자의 1년 연봉에 해당되는 큰 금액이다.

만일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제자들처럼 말했을 것이다(4-5). 그러나 이 여인의 깊이 있는 믿음의 언생은 예수님의 평가(10-13)에 의해서 그 의미가 밝히 드러난다. 핵심은 주님의 장례를 위하여 한 좋은 일이었다. 불과 몇 일 앞으로 다가온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라는 메시아 사역이 예고된 이후(2- ), 그것도 배반과 음모가 판을 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 주님을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었던 여인(3-5 7), 그녀는 지금 이런 혼돈 가운데서도 주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자리로 혼돈의 세상을 뛰어넘어 버린다.

 

    [네 번째 수난예고] 그때에 일어난 일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1)

    “그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죽이려고 의논하되.”(3-4)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6- )

    “그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14-16)

 

이들 모두는 서로 있는 장소는 달랐지만 동일한 시간 안에 있다. 제자들, 대제사장들, 백성의 장로들, 나병환자 시몬의 집 사람들, 향유 한 옥합을 드린 여자, 가룟 유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유월절을 이틀 앞둔 그 즈음에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있었고, 동시에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주님께 드린 바로 그 때에, 그러나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은 30에 파는 배반 결의를 자행한다. 참으로 다양한 일들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서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사실은 주님 옆에 있다고 해서 다 주님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해서, 성도가 되었거나 교회 생활을 많이 했다고 해서, 기적과 이적을 보고 체험했다고 해서, 종교 지도자라고 해서,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그렇다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놀랍고 당혹스러운 것은 어느 누구도 자기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이동(shift)해 온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7) 예수님의 머리에 그것을 부은 여인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모두가 다 자기 배만 채우며 사는 욕망의 계절에 한송이 꽃과 같은 향내 가득 풍기며 시대의 악취를 몰아내는 한 여인을 만난다. 오직 여인만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와 같지 않다고 이 여자를 괴롭게 하”(10a)려는 죄행 뿐이다. 모두들 자기 잣대로 평가하고 말한다. 메시아를 죽여서라도 자기들의 목적을 성취하겠다고 하고 있고, 예수님을 물건처럼 팔기 위해 흥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현실이다. 그래도 여인처럼 사는 사람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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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주일부터 4월 부활주일(2.23 - 4.20)까지 마태복음 26-27장을 설교합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오듯이 혼돈과 아픔이 물러가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푸르고 푸른 계절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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