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444주일 | 하나님의 사랑(5): 바울, 그리고 나(롬7.14-25)

1444주일 | 7.14-25

하나님의 사랑(5): 바울, 그리고 나

 

바울의 에 대한 자전적 고백(7-25)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고백이 바울이 로마서를 쓰고 있는 사도일 때의 고백이라는 점이다. 이미 영적 고봉에 올라 있는 때 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의 높은 고점을 통과해가고 있을 때였음에도 그는 그 자신 안에 넘쳐 흐르는 현재의 죄와 싸우는 중이다.

 

바울고백록, 현재

 

바울은 이 자전적 고백을 하고 있으나, 하지만 자신에게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의 종으로 팔렸다.’(14b) 그러면 이 소망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렇다. 이를 고백해 가는 바울을 따라가 보자. , 그러면 칭의를 통과하여 성화 안에 있으면서도, -이 신앙의 여정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며 살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내면을 향한 바울의 고백은 무엇인가? 현재 자신의 상태를 토해내고 있는 15절부터 살펴보자.

 

15-17-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행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15a).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한다(15b).

  -원하지 않는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15b).

    -그렇다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 된다(16).

    -그러나 이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17a).

    -이것을 행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죄다(17b).

 

18-20- ‘안다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안다(18a).

*선한 일을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지는 못한다(18b).

  -나는 내가 바라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있다(19a).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하고 있다(19b).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20a).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는 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다(20b).

 

21-23- ‘깨달았다

*나는 하나의 원리를 깨달았다(21a)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21b).

  -나의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22).

  -내 육체에는 또 다른 법이 있다(23a).

    -또 다른 법내 마음의 법과 싸우고 있다(23b).

    -나를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죄의 종으로 만들고 있다(23b).

 

24-25- ‘결론

*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24a)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내겠는가?(24b)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25a). 

  -아직도 내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있다(25b).

  -아직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따르고 있다(25b).

 

성화대로, 치열한 영적 전쟁터다.

 

바울이라는 의 고백록은 현재 시제(時制)로 되어 있다. 이는 과거 시제(7-13)와 분명하게 구별된다. 한편 다른 곳에서도 바울을 지칭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용례(9.3, 11.1,13)에서 볼 때 아마도 바울 자신의 자전적(自傳的) 고백이라고 보여진다. 그는 칭의 이전의 인간,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을 다룰 때 이 고백을 거기에 위치시키지 않았다. 그는 칭의 이후, 성화의 거룩한 행진 안에 있는 인간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자전적 고백을 토해낸다.

 

나는 칭의와 성화의 길을 걷는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칭의와 성화의 은총 안에 있는 자신의 어떤 힘으로 말미암아 이 은총의 길목을 통과하거나 유지하거나 풍성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믿고 있다. 이 무한하신 은혜와 축복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현재는 바울의 자전적 고백(7-25)과 일치하는 공통분모가 오히려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칭의가 내 힘(선행, 행위, 율법)으로 되지 않은 것처럼 성화 역시 죄사함 받은 인간 자신 안에서 나오는 힘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7장의 결론이기도 한 25절 말씀이 절묘하다. 왜 느닷없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하겠는가. 바울일지라도 그를 살리고 회복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죄(6)와 율법(7)으로부터 해방된 칭의와 성화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래서 내적인 영적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감사하는 역설의 신앙으로 서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7장의 모습인 자신을 얼마나 많이 경험하는지 모른다. 지금 이처럼 살아가는 순간도 역시 그렇다. 그리고 절망한다. 어쩔 수 없는, 별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나를 안타깝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영적 모순 때문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아파하고 괴로워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러고도 그리스도인가?”

어쩌면 구원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나의 죄행(罪行)을 구원 받은 내가 힘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할 때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말이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고,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고, 내가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갈 수 없고, 내가 나를 완전한 인간으로 재생산할 수 없고, 내가 나를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 수 없고, 내가 나를 저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는 존재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어찌할 수 없는 죄의 자리에 서 있는 나를, 그럼에도 찾아오시며, 안아주시며,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아들이라불러주심에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경배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음을 인정한다.

죄가 나를 그리스도 밖으로 밀어낼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의 자리에서 의의 자리로 이끄는 분이심을 믿는다. 나는 나를 절망하게 만들지만 주님을 나를 소망하게 만드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이게 나의 유일한 희망 아닌가. 그래서 염치없고, 고개 들어 주를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의 아버지이시기에 감사의 고백을 토해낸다. 오늘도... 이 예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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