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453주일 |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삼상1.1-18).

1453주일 | 삼상1.1-18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사무엘상은 사사시대를 배경 삼아 시작된다. 이것은 엘리가 죽을 때의 부고장에서 알 수 있다: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40년이었더라.”(4.18b) 그런데 정작 엘리와 사사는 엑스트라이고, 태어나지도 않은 한나의 아들’(11)이 주연으로 자리하는 분위기다. 사사시대임에도 사사 엘리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마치 쇠락해 가는 명문가의 몰락을 보는 듯하다.

한편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레위인이며 제사장 가문에 속한 고핫 자손의 후손이다(1). 하지만 사무엘상 1장이 전하는 바를 살펴보면 그는 제사장으로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사시대가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영적 암흑기로 치닫고 있음에도 그는 레위인이자 제사장으로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사무엘상, 사사시대가 그 배경이다.

 

분명한 것은 사사가 살아 있고, 그러니까 사사가 다스리던 때인데 전혀 사사시대스럽지가 않다. 뭔가 묘하다. 사사 엘리도, 그의 아들 제사장들(3b)도 사무엘상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분명 사사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사무엘상 이야기의 중심은 사사인 엘리가 아니다. 지파로 따지더라도 중심 지파가 아닌 에라브림 지파에 속한(1), 그것도 한 여인인 한나가 써가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사무엘상 주제의 흐름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단지 태중에 있는, 하지만 아직 아버지 엘가나와 어머니 한나의 품에 있는 어린(24b) 사무엘에게로 사무엘상의 중심이 이동한다. 사사시대인데, 엘리가 있는데도 말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이처럼 등장시키신다.

분명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3b) 실로에,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하며 제사를 집례하던 때였다. ‘여호와의 전이 있고, 제사가 있고, 제사장이 있다. 무엇보다 사사가 다스리는 때다. 그런데 사사시대가 영 무엇인가 부자연스럽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2장에서는 사사시대의 영적 형편이 소개된다(2.11-36). 그런데 사무엘상은 지금 다스리던 사사가 죽고, 그러자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범죄한 때가 아니다. 엘리가 시퍼렇게 살아서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때다(4.18b).

 

 

한나의 영성

 

[1] 그녀가 지금 아들을 구하는 것은 단지 브닌나(브집사)의 질투(투기, 시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고 봐야 할까? 혹은 대()를 잇는 아들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엘가나의 가정에서 버림을 당할까 봐서 어떻게든 아들을 얻고자 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런 육신적인 욕심을 따라 구하여 낳은 아들이 사무엘이라는 말인데, 그의 출생은 이처럼 부모의 파워게임(아들낳기 경쟁심)이라는 부산물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이것이 1장을 지나 2장에 서 있는 한나라는 어머니란 말인가?

[2] 이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만일 한나는 이미 무너진 레위인지자 제사장인 엘가나의 가문, 특별히 그 아들들(그러니까 브닌나의 아들들)에게서도 역시 결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영적인 텅빔을 보았다면... 사사가 있으나 전혀 무능력한 시대를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할 아들을 주시면’(11b)이라면...

[3] 만일 한나가 이미 사사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으로 기도를 시작한 것이라면, 어떤가? 그럼 1장의 기도(10-11)의 부르짖음과 통곡은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면 과연 떡두꺼비같은 아들 하나만 달라는 것이 기도의 전부였을까?

[4] 1장의 기도(10-11)는 단지 무자(無子)함을 면하기 위한 무엇인가 없는 자의 개인적인 서러움이고, 그러면 자기 자신만의 행복과 복을 원하는 그런 기도의 사람이란 말인가? 그러면 영성의 사람이 아니라는 얘긴데... 역시 그러면 사무엘을 설명할 길이 없는데...

지금 사사시대는, 그야말로 모두가 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엘가나의 가정도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사사 엘리와 그의 아들인 제사장들마저도 말이다(2.11- ). 그러나 오직 한 사람, 한나, 한집사 그녀만은 무너져가는 이스라엘, 이처럼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반복하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점점 타락과 심판의 길목으로 빠져가는 이스라엘, 예배가 있고, 제사가 있고, 성전이 있어도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이거나 드러내는 일에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총체적인 위기, 그 속에서 오직 한 사람 한나만이 하나님의 마음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통곡한다.

이 타락한 사사시대를 다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세워놓기 위해 기도의 무릎을 꿇고 주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만군의 여호와여, 저의 괴로움을 돌아봐 주십시오.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를 잊지 마십시오. 저에게 아들을 주신다면, 그 아들과 그의 전 생애를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11, 쉬운성경)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11)

 

엘리의 땅에도 한나의 하늘이 열린다. 한나는 단지 브닌나의 코를 납작하게 할 그런 아들을 하나 더 이 땅에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동원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찬란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 이것이 그녀의 기도의 핵심이고 그녀의 영성이다. 한나의 가슴에는 이 불이 있었다. 단지 너는 있는데 나는 없다, 그러니 나도 있어야겠다, 그래서 기도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브닌나의 훼방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6b)였고, 그래서 괴로움(10), 슬픔(15), 원통함(16)이 한나를 엄습해 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나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도 멈추지 않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고,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고, 기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낸다. 기도가 응답되자 브닌나는 사무엘상에서 사라진다. 그녀의 아들도 마찬가지다.

한나가 당한 인간적인 고통과 아픔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한나는 이런 것들에 전혀 연연하지 않았다고 몰고 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녀도 역시 사람이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쓸쓸하고, 한스러웠을까? 우리가 당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마저도 하나님의 흐름으로, 하나님의 회복으로, -단지 개인적인 아픔으로 끝내 버리고 그것을 잊고 무마하고 넘어가기 위해서 기도를 빌려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듯이 사사시대의 파도를 타오르게 하는 부흥을 열어가고 있다.

양무리교회와 을지트를 항해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시대의 아픔을 보면서, 영적인 공황과 무너짐을 보면서,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거기에 휩쓸려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이 영적 황무지에서 장미꽃을 피워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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