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6주일 | 삼상17.55-18.5
사울, 성령이 떠난 이후(1)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16.13-14)
사무엘상이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이다(16.13-14). 이제부터 다윗은 성령에 크게 감동된 사람으로 사무엘상을 성취해 간다. 영광이고 소망이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로서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슬프고 아픈 비극이다. 시작은 부모를 공경하는 성령의 사람이었지만 그 끝은 불순종과 악한 사람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인생을 이처럼 극명하게 대조되게 하는가. 이를 위해 사울의 생애와,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자.
1. 사울_ 관찰자(17.55-58): 요나단에게 헛된 답을 찾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삼상13.13)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13.14)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왕조가 사울家가 아닌 다윗家에 의해 계승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사울왕조는 예고편으로 끝이 난다(13.13-14a). 하지만 다윗왕조는 이스라엘의 빛나는 역사가 된다(13.14b). 그리고 그 절정은 메시아(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
그럼에도 사울이 보인 반응(언행)은 사울왕조 시대를 열 수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삼상20.30-31)
그런데 결국 사건이 터진다. 사무엘상 13장에서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무엘의 언약을 어기고 번제를 드린다(8-9). 그러자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고(13),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14b)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울의 생각이 이처럼 달랐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무엘상에 다윗이 등장한다. 16장에서 다윗은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는다. 이어서 17장에서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지고,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블레셋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다. 자, 그러면 누가 사울의 뒤를 잇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인가? 다윗이다. 이것이 사무엘상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역사다.
2. 사울_ 다윗 시기하기(18.6-30): 질투와 음모로 일관하다.
그럼에도 사울은 다윗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크게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다. 그런데 정작 사울만이 이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역행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미 사울 자신에게서 요나단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이미 다윗에게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18장의 다윗은 어떤가. 다윗은 ‘이날 이후로’(16.13) 요나단(1,3), 온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 16), 미갈(20,28), 사울의 신하들(22), 그리고 사무엘에게까지(19.18)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 이것이 성령 안에 살아가는 다윗의 모습이다.
하지만 유독 사울에게 다윗은 ‘평생’ 질투의 대상일 뿐이다(18.8-9,12,15,29):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9)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12)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의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29)
사울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12,14,28a; 16.18 참조)을 보고 알았음에도 -이는 사울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17.37b)- 평생을 이처럼 악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살았다. 이것이 악령(10; 16.14 참조)에게 붙잡힌 사울의 실상이다.
사울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끝내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다.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사울은 다윗을 망하게 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그것도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셨고, 그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이미 다윗을 사울 자신의 뒤를 잇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사실을 사울 역시 다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다윗을 제거하고 그를 죽이겠다는 것은 단순히 왕권을 지키겠다는 수준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와 일하심을 거역하고, 반대하고, 실행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가장 악한 행동이고, 불신앙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반기를 드는 도전이다. 지금 사울은 이 일을 하겠다는 것이고, 실제로 이를 행하는 중이다. 얼마나 불쌍하고 불행하고 불의한 사람인가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게 요구하시는 목적이 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이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 말씀을 불순종한 것이 사울이다. 이 말씀을 따라 순종한 것이 다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