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7주일 | 삼상24.1-22
사울, 성령이 떠난 이후(2)
쫓기는 자, 다윗(23.1-29): ‘여호와께 묻다.’
쫓는 자, 사울(23.1-29): ‘사람을 의지하다.’
D -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2a)
G -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2b)
D -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4a)
G -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4b)
D -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10-11a)
G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11b)
D -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12a)
G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12b)
S - “그 때에 십 사람들이 …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19a)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21)
둘 다 하나님을 말하는데, 어떻게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살아갈까.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이처럼 다르게 만든 것일까.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이지만 살아가는 목적과 방향은 다르다. 한 사람은 성령이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성령이 임하였다. 이들은 이 차이와 다름을 자신들의 온 삶으로 증거해 낸다. 엔게디 동굴에서의 만남은 이를 보여준다.
다윗(1-15): 기름부음 받은 상전(사울, 6,10)에게 손대기를 거절한다.
*사울
- ‘어떤 사람’이 이르되(1):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나이다.”
- “사울이 … 다윗…을 찾으러 … 갈새”(2)
*다윗
-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4a):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 ‘자기 사람들’(7a):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 ‘어떤 사람’이 권하여(10): “왕을 죽이라.”
→ ‘여호와’(10b,12a,15a)
사울은 블레셋 전쟁이 끝나자마자 3천 군사를 이끌고 다윗 사냥을 다시 계속한다(1-2). 이때 사울은 용변을 보기 위해 다윗의 부하들이 숨어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기회를 잡은 쪽은 다윗이다. 하지만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상전(사울, 6,10)에게 손을 대기를 거절하고, 복수는 하나님께 맡긴다(7-15).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 묻고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23.2a,4a,10-11a,12a).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께 물으며 행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1)의 이야기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다윗은 ‘어떤 사람’의 말을 따르는 사울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무슨 말인가. 예,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이 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다윗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사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10b)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12a)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를 심판하사 ….”(15a)
하지만 사울에게는 이 ‘하나님’이 없다. 다윗과 다르다. 사울에게는 하나님은 없고 사람들만 있다. 오직 악의 편에 서는, 다윗을 죽이는 일을 공모하는, 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 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이 보여주는 모습은 슬프고도 낯설다. 왜 이처럼 자신도 망하고, 이스라엘 나라도 힘을 잃고, 하나님도 슬퍼하시는 쪽으로 치달을까. 하나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목적과 기대하심을 잃어버린 자의 슬픈 자화상이 사울이다. 왜 이처럼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이 떠나서다. 그러자 남은 것은 귀신이 임한 사람인 자신이다. 슬픈 자아이고, 죄된 인간의 모습 뿐이다. 그러니 죄 가운데 뒹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어떤 모습이고, 왜 그러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사울(16-22): 마침내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인정하며 예고한다.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17b)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18)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19b)
*“너는 …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21)
말하는 것이 신앙일까. 당연한 것을 왜 물을까? 사울이 하나님을 말하며 고백하는 것에서 드는 생각이어서다. 사울은 바로 이어지는 모습에서 지금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백하는 것을 지키지 못한다(18,19b,21). 26장에서 다시 다윗을 죽이려 하기 때문이다.
사울은 다윗을 어떻게 해서든 죽이려고 할 뿐이다. 성령이 떠난 상태에서, 그런 상황에서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는 때에도 사울의 모습은 오직 다윗 죽이기가 인생 목표였다. 하지만 다윗은 대적 블레셋(아기스)에 의해 살아난다(29장). 그러나 사울은 블레셋에 의해 죽는다(31장).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다. 이로써 누가 이스라엘의 참 지도자인가를, 동시에 그를 세우시는 자가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
사울은 참담하게 망가지는 중이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 상황과 형편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은 것이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차이이지만 그러나 사울이 진짜 쫓아야 할 것은 다윗몰이가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과 율법을 쫓는 기본의 회복이다. 하지만 사울은 끝내 이 일을 시도하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40년 통치 대부분을 블레셋 전쟁 –결국 그들과의 전쟁에서 전사(戰死)한다(사무엘상 31장).- 에서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결국 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교차로를 지나게 한다. 하나님 없는 자의 모습을 보여준 사울, 하나님을 따라 사는 자의 모습을 보여준 다윗에게서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