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5송구영신 | 눅15.11-32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에 일어난 일들(2)
15장의 사람들은 아버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없다. 무엇보다 ‘잃었다’에 해당하는 게 없다. ‘끝났다’고 생각했을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이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찾았다’도 없고, 동시에 ‘기쁘다’도 없다. 동생을, 즉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의 가족을 다시 찾았음에도 말이다. 아들들의 틈바구니에서 휘청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럽다.
집 밖의 탕자(11-24)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12)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13)
다 없앤 후 … 흉년이 들어(14)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15)
이에 스스로 돌이켜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17-2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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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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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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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2-24)
잃었던 아들에 대한 이야기 안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아버지는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시며(12), 아들이 가장 어려울 때 생각나는 분이시며(17), 죄에 대한 회개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아버지시며(18-19), 그러기에 잃어버림이라는 타락(불순종)의 자리를 끝내고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다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20).
놀라운 것은 아들이 아버지를 기억하는 자리다. 성공했을 때인가, 영광의 자리에서인가, 아니면 예배의 자리에서인가, 믿음의 자리에서인가. 아니다. 그럼 어디에서, 어떤 형편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기억하는가? 예, 실패의 자리에서다. 결핍과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락에서 아버지를 기억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패배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잃어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아들도 그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아버지 하나님도 실패한 아들을 향해 ‘그래, 꼴 좋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너의 아버지라는 게 창피하고 부끄럽다!’라고 하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는 길목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거리가 먼데도 아들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20). 그리고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묻지 않고 돌아옴을 그대로 받아주는 아버지시다(22). 마침내 잃어버림을 끝장낸다. 뿐만 아니라 성대하게 환영(회복, 잔치) 하시는 아버지이시다(22-24). 또한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큰아들을 설득하시는 분이시다(25-32a). 그리하여 큰아들도 ‘잃었다’ → ‘찾았다’가 ‘노하다’(28)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 아버지처럼 ‘잃었다’ → ‘찾았다’ → ‘기쁘다’(32)로 변화되기를 기대하시는 아버지이시다.
한편 집 밖의 탕자에게는 ‘잃어버림’이라는 자리에서도 다시 당당히 요구할 것이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점이 놀랍다(12). 이 아버지는 누구인가. 네,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다.
탕자의 아버지이시자 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아들처럼 아버지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버지를 모르고서, 지금도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고 문 밖에서 떨고 있거나,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있는, 그러니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갈 생각마저도 없거나 주저하고 있는 불효자(不孝子)는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을 품고 아버지를 바라본다.
오늘 지나온 2025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탕자처럼 돌아갈 집이 있고, 맞아 줄 아버지가 있는 사람은, 예배할 교회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아니 예나 지금이나 돌아가기만 하면 여전히 맞아주시는 분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섬기며 사는 자는 정말 복 있는 사람이다. 이젠 아버지가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자! 그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아버지 밖에서 언제까지 기다리게 하고 있을 것이며, 도대체 언제까지 고집부리고 있을 것인가. 오늘 이처럼 주께로 돌아왔으니 아버지께서 맞아주시는 것 아닌가.
아버지의 외로움과 눈물
결국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기쁨을 회복한다. 그러나 끝까지 이해하며 관용하기를 거부하는 집안의 탕자인 큰 아들 때문에는 외롭다(29-32). 아버지의 마음을 곰곰이 생각한다. 오늘도 아들을 설득하기에 지치고 피곤해서 두 눈을 꼭 감고 슬픔에 잠긴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문 밖에 서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아버지시다(계3.20).
그렇기 때문에 잔치는 취소되거나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 때문에 잔치를 계속 진행한다. 주님이 배설하신 잔치는 바로 회개하고 돌아온 아들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오늘도 우리에게 잔치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1년이라는 잃어버린 은혜를 다시 얻기 위해 작은아들처럼 오늘 우리가 주께로 나아왔기 때문이다. 오늘 송구영신예배가 그 잔치 중에 하나다. 나는 아버지를 잃어버렸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다시 찾으신다. 주께로 나아오기만 하면 주께서 찾아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