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새벽 | 창21.22-34
땅과 후손, 그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창세기 21장은 좀 특별하다. ‘땅’과 ‘후손’에 대한 창세기의 주제를 옹골차게 무대에 올려놓아서다. 창세기 12장 1-2절이다: “…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 이에 이브라함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12.5b)다. 이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a)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다.
그리고 15장이다. 과연 12장의 약속은 어떻게 되어갈까. 하지만 땅과 후손에 대한 언약은 요원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늘의 별들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시면서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15.5b) 하신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먼저 후손에 대한 약속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15.6) 바로 이신칭의(以信稱義)다. 그리고 땅에 대한 약속이다: “네 자손이 4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15.16a)
마침내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후손의 약속이 이삭의 출생으로 이루어지고(21.1-7), 이어서 땅에 대한 약속이 씨앗(한 알의 밀알)처럼 응답된다(31-34).
아브라함 - ‘땅’
‘후손’에 이어 ‘땅’에 대한 언약의 진전이 점차 그려진다(31 → 23.18). 이로써 창세기 15장의 언약이 모세와 출애굽 이스라엘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출 19장)에서 성취되기까지 긴 400년, 정확히는 430년(갈3.17)의 대장정이 희미하게마나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비멜렉 - 회복
바로 앞 20장에서 호되게 당한 아비멜렉은 두 얼굴로 아브라함을 상대한다. 하나는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을 간증해 낸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22b)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고 살았다는 뜻이고, 이것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읽혀지고 있으며, 놀랍게도 긍정의 힘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어서다.
다른 하나는 책망이다: “…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라라.”(23a) 분명 앞 20장 사건에 대한 점잖은 책망이다. 거짓말은 아브라함이 했으나 그 값은 아비멜렉이 치를 뻔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바르게 살라고, 정직하게 행하라고,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 답게 처신하라고, 다시 거짓되이 언행하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로 되돌아오지 않아야 함을 얘기하고 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처럼 그를 이끄시며, 도우시며,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동시에 이를 세상이 또한 정확하게 알고 보고 느끼고 있다. 아브라함과 그가 사는 곳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과 경외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렬함이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서서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엡4.13)는 중이다. 그래서 더 당당하고, 진실하고도 깨끗하다. 75세에 부르심을 받아 100세에 이른 이 기나긴 신양연습의 여정에서 그는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그리고 그 동안 자신 안에 밀려들어온 삶의 여정이 만들어준 하나님을 긍정의 방향으로 품어냄으로써 이처럼 하나님이 믿어주고 만들어가리라 한 약속을 신실하게 응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