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고난2/화 | 막14.43-52
폭력을 대하는 태도, 유다와는 달라야 한다.
유다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선택된 자 중 하나다(3.13-19). 그도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내내 함께 거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던 제자였고(6.7-13,30),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무수한 기적과 이적을 목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끝내 회개할 기회는 놓치고서,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소일하며,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의 반대쪽으로 걸어가 버리고 만다.
유다의 폭력 vs 예수님의 태도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해서 골고다로 가는 길이, 하나님 우편 보좌로 가는 길로 바뀐 게 아니다. 한편 유다는 이 모든 일이 진행되던 시간에, 그러니까 겟세마네 기도회 시간에 그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가서 스승의 몸값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런 자임에도 그는 가증스럽게도 주님의 볼에 입을 맞춘다(44-45).
주님은 붙잡히고(46), 제자들은 도망가고(27,50-52), 이렇게 해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49). 수난예고(8.31, 9.31, 10.32-34)는 이제 현실이 되었고, 어제까지의 제자가 오늘에 와서는 스승을 파는 자로 손바닥을 뒤집는다. 유다는 자멸을 선택했고, 실전을 마치 연습(연극)처럼 소화해 낸다. 지난 3년의 제자훈련이 완벽하게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3년의 제자훈련이 남긴 결론이다: “제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50) 물론 주님은 다 아셨다(41b):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마침내 유다는 스승을 팔아 넘기고, 큰소리 빵빵 치던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는 것도 모자라 ‘저주하며 맹세’(71)까지 하면서 떨어져 나간다.
이런 가장 극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신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그분은 결과를 보시고 평가하시지 않으셨고, 비록 넘어지고 자빠져서 만신창이가 되었을지라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다락방에서부터(12-26), 감람산으로 가는 길에서(26-31), 겟세마네 동산에서(32-4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히실 때까지(43-52), 그 사이사이에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모습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를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을 안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셨던 주님에게서 무엇이 우선한가를 깨닫는다. 이처럼 죽음으로 가는 길마저도 성경을 이루는 것으로(49) 헌신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