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95새벽 | 사14.1-32
3강국들의 장송곡(葬送曲)
이스라엘은 안식으로(1-3), 이방 나라들은 패망이다(4- ). 하나님에 의해서다(1,3,5,22,24,32). 바벨론(13장)과 이스라엘(1-2)에게 역전의 나팔이 울려 퍼진다: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들을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들을 주관하리라.”(2b) 마침내 역전이다. 다같이 죄인이고 죄악된 나라인데 다르다는 점,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스라엘의 회복(1-11)
아하스가 유다를 다스리고 있을 때(7-14장, 7.1, 14.28) 이스라엘은 이미 바벨론 포로와 귀환이 예언되고 있고(1), 하지만 바벨론은 패망이 예언된다(13.1-14.23). 가장 사악하고 거짓된 왕이 다스리는 때에 하나님은 7-14장을 통해서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신다. 이스라엘의 죄는 저들로 하여금 포로 되게 하였으나, 하나님의 의와 사랑은 저들을 긍휼히 여기신다(1a, 7.14, 9.6-7, 10.20-23, 11.1-5,10-12.6). 이스라엘이 잘나서가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의 긍휼이며, 다시 택하심을 통해 고향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1a).
하나님은 이처럼 역전되는 그 날에 부를 [바벨론 장송곡]을 미리 발표하신다(4-11). 하나님이 바벨론의 학대와 강포라는 악인의 몽둥이를 끝나게 하시는 날이 있다(4-6). 악인은 이렇듯 온 세상의 비아냥거림과 조롱거리로 전락한다(8-11): “구더기를 요로 깔고, 지렁이를 이불로 덮고, 누워라!”(11b, 표준새번역)
바벨론 장송곡(12-23)
바벨론은 하늘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기(12) 바로 직전까지 이런 마음을 품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13-14) 바로 ‘교만’이라는 죄다. 이러니 음부까지 추락하는 것 아닌가(15). 먼저 땅을 취하고(21), 이름을 끊고(22), 멸망의 빗자루로 말끔히 쓸어버리심으로서(23)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20b)게 하신다.
바벨론의 헛된 꿈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여호와께서 … 이제는”(3,7), 또한 “그러나 이제 … 만군의 여호와께서”(15,22) 바벨론의 모든 죄악을 ‘음부’(무덤, 9,11,15,19)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하신다. 가장 큰 비극은 이제 더 이상 돌이킬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20). 이게 하나님의 심판이다.
앗수르의 멸망(24-27)
블레셋의 멸망(28-32)
하나님은 “파하며 … 짓밟으리니”(25a)라는 앗수르를 향한 심판 또한 ‘반드시’(24) 그렇게 되게 하실 것이라 하신다. 하나님이 결정하셨으니 누가 이 하나님의 경영을 폐하고 돌이킬 수 있겠는가(27). 하나님이 생각하셨다면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24a). 이로써 이스라엘을 짖누르던 멍에의 짐는 벗기어지게 될 것이다(25b). 하나님의 보좌 보다 위에 있는 행세를 하던 앗수르, 하나님의 말씀마저도 앗수르 왕의 칙령 밑에 있다고 교만하던 그들의 종말은 이처럼 심판이다.
한편 블레셋은 요담의 아들이자 웃시야의 손자인 악한 왕 아하스 16년(7-14장)이 그 끝을 알리는 해에 블레셋은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이사야를 통해 전달된다(28-32). 그렇다면 이 메시지는 아하스의 아들로서 그의 뒤를 잇는 히스기야에게 요구되는 말씀이 되는 셈이다.
아하스는 親앗수르 정책에 따라 앗수르와 화친함으로써 주변 국가들의 침략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죽자 블레셋은 히스기야에게 反앗수르 동맹을 요구한다. 이는 블레셋을 ‘치던 막대기’(29)인 앗수르가 부러진 것에 비유되고 있듯이 힘이 점차 약하여지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앗수르나 블레셋이나 애굽이든 간에 열방을 의지하여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당시 패권을 잡고 떵떵거리던 나라들을 하나 둘 심판대 위에 올려 놓으시며 심판(멸망)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블레셋 역시 ‘다 소멸되리로다!’(31)라고 선언하신다. 따라서 블레셋의 사신들에게 화친(동맹)을 맺지 않겠다고 대답하라 하신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32)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이스라엘과 이방 3강국들(바벨론, 앗수르, 블레셋)의 쌍곡선은 이것을 잊지 않게 한다. 사실은 둘 다 범죄한 나라다. 그런데 하나는 다시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1-3), 이방 나라들은 패망하게 된다(4- ). 왜 그럴까? 신비한 부분이면서 두렵기도 한 대목이다. 하나님이 나에게도 이 둘을 적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에 서게 하셔도 할 말이 있을 수 없질 않은가.
[바벨론 장송곡]이 신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겁도 난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 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시94.18)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방 나라들처럼 외면(유기, 롬1.24-32)하셨다면 나 역시 음부 저 밑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슬픈 노래를, 바벨론에 예고된 장송곡(4-11)을 듣고 있지 말라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