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주일 | 모세야, 일어나 함께 가자!
모세야, 일어나 함께 가자!
모세를 찾아오신 하나님(1-6)
돌아보면 모세의 나이 40에 자신의 열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고자 할 때가 있었다(2.13-14). 그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바로의 왕궁에서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행사가 능했던 때였다(2.13-14, 행7.22-24). 스데반은 이 사건을 이렇게 증거한다: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닫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행7.25) 모세의 불은 이렇게 꺼졌고, 결국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후 40년 동안 야인처럼 광야에서 양을 치는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듯 출애굽기 1-2장에는 모세의 80년 인생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시작하신다. 그 시작은 떨기나무(가시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 불이 사그라지지 않고 가시나무가 타지 않는다(2). 하나님의 불은 떨기나무에 의존하지 않는다. 모세가 자신의 열심으로 점화한 불꽃은 금방 사그라지고만 열심이었으나(#2장, 2.11-15), 하나님의 불은 40년 동안이나 꺼져버린 ‘모세의 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3-4장).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7-10)
모세의 소명에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11-12)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4)라고 응답한 이후에 긴 침묵을 깨고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 앞에서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내가 누구이기에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1).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겠습니까?”(11). 그러니까 ‘하지만 어째서 저입니까?’에 들어있는 모세의 마음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시는데요?’ 이 말에는 지난 40년 전에, ‘그때 왜 나를 돌아봐 주시지 않으셨습니까’(2.11-15 참조) 그러니까 그는 40년 전인 출애굽기 2장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3-4장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장을 놓는 것처럼 대답한다.
모세의 절규를, 모세의 피를 토하는, 40년 묵은 깊은 통곡이 보이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무런 책망을 하시지 않았다. 묵묵히 답해 내시는 하나님이 모세를 녹여내고 계신다. 그리고서 말씀하시기를 모세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하신다. 이제 모세는 더 이상 고독한 광야에서 오직 양무리를 벗삼아 하늘의 별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 모세! 이제 내가 왔지 않느냐!’ 바로의 왕자로서의 권력과 힘이 아닌, 양치는 지팡이를 든 목자도 아닌, 나 여호와 ‘하나님의 지팡이’(4.20)를 든,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든 하나님의 종으로 그를 불러내신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12)
자기열심과 반대로 오히려 그것 때문에 찾아온 생각 밖의 실패, 그리고 상처... 그럼에도 방관하시고 붙잡아 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과 섭섭함이 좀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을 때가 많다. 그래도 내가 시간을, 몸을, 자식까지를, 다들 그리 좋아하는 돈을, 내 삶의 전부를 교회와 주를 위해 사용하며 달려왔는데 하나님까지 내 수고와 헌신을 몰라주신다고? 이렇듯 모세는 ‘섭섭 마귀’가 넣어준 생각을 하나님에게까지 서슴치 않았다는 점이다.
자, 어찌 모세만 그러하다고 할 수 있는가. 소위 믿음생활과 교회생활을 하면서 성도들이나 목회자에게 시험이 들었다는 것의 대부분이 알아주지 않음에 대한 섭섭함이다. 지금 모세가 그리하다. 자신을 버리셨다는, 내 열심과 정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다는,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께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패배감과 상실감이 지난 과거에 꽁꽁 그 사람을 묶어놓곤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셔도, 은혜를 받아도 시큰둥하거나 엉거주춤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를 찾아오신다. 그리고 그를 설득하고 계신다. 출애굽기 3-4장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진정성과 속마음을 토해 내신다. 주저앉아 있고, 타다만, 그래서 꺼져버린 나무토막처럼 별로 쓸모가 없는 모세와 같은 인생에게도 하나님은 타는 불꽃으로 찾아오신다: “모세야 모세야!”(4b)
인생은 누구나 과거가 있다. 그것이 나를 절망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올가미로 언제까지나 나를 죄 아래서 허덕이게 하기도 한다. 거절감, 상실감, 무기력함, 한 번의 실패가 그렇다. 사탄이, 불신앙이, 교만이 그렇다. 어떤 인생도 자신의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외면하시지 않고 찾아오신다. 그리고 모세와 같이 쓰시겠다 하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찾아 오셔서, 부르시고, 만나주시기 위해 마음의 창을 강하게 두드리시는 노크 소리를 듣는다. 황송할 뿐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 나 역시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 오늘도 나를 부르고 계신다. 오늘은 나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기회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