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주일 | 욘1.1-5
폭풍행전, 거의 깨지게 된 때까지!
하나님이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밋대의 아들 요나(Jonah, 왕하14.25; 마12.39-41, 16.4, 눅11.29-30,32)를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써 그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다. 요나가 살고 있는 시대 역시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다. 화려한 명문가에서 출생하여 당대의 학문을 익히며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유명한 선지자 밑에서 선지자 수업을 받으며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던 인턴 선지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이다.
사명과 불순종(1-3)
많은 사람들이 요나처럼 ‘그러나’(3a)로 살아간다. 사명을 받았음에도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 있다. 하나님 따로, 나 따로다. 우리시대에도 하나님과 별거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일은 하나님이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오셨는데 요나는 하나님을 피하여 떠난다. 죄는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3a)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배삯을 지불하고 배에 올라 지중해를 가로질러 앗수르(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 반대편으로 가는 도피까지도 좋았다.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일이 척척 잘 진행되고 있으니 요나는 아마 “하나님의 뜻이나 보다” 그랬을 것이다. 사실 일이 잘 풀릴 때 그때가 위기다.
풍우대작(風雨大作, 4-5)
첫 번째는 소명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오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그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자로 전락했을 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폭풍으로 찾아오셨다. 역시 사람들은 약간의 혼란을 느낀다. 폭풍은 자연현상이 아닌가. 맞다. 하나님은 말씀이 아니라 ‘큰 바람’으로 찾아오셨다. 그러니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오직 큰 바람만을 본다.
지금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선지자도 예외가 아니다. 첫 번째 찾아오셨을 때는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았는데(1-2), 이번에도 역시 “여호와께서 … 내리시매”(4a) 임에도 불구하고 ‘꽝’이다. 하나님이 찾아오셨는데도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큰 바람’으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과 폭풍을 동시에 사용하고 계신다.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4b)
하나님이 요나의 인생에 그만큼만 개입해 들어오셨다. 사명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피했던 요나인데 그는 아직 깨어지지 않았다. 이 부분이 압권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인생, 그가 바로 요나, 바로 ‘요 나!’다. 깨어졌어도, 하나님이 그의 인생 쪽박을 깨뜨려 버리셨다할지라도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의 깨지게 된’ 바로 거기까지만 이다.
때문에 완전히 깨어지지 않고, 거의 깨어지게 된 것까지가 또 하나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그러나 요나의 딜레마가 물건을 바다에 던지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내가 통과해 가고 있는 대풍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물건 몇 개 포기하는 것으로, 돈 얼마 잃고, 그래서 “아, 재수가 없구나. 왜 이렇게 꼬이지!” 그러고서 몇 가지 정리하면 폭풍이 물러갈까?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하고 있는 부분이다.
요나는 폭풍 가운데 있는데 그 원인은 모른다. 하나님이 찾아오셨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최대 딜레마다. 그러니까 “그러나 인생”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선지자다. 하나님이 임하신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사명자다. 마침내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그를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로 파송하셨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오심과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첫 번 ‘그러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고, 두 번째는 그 일을 감당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또 다른 현현인 폭풍 앞에 역시 “그러나 요나”로 서 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다. 내 인생행전 또한 “거의 깨지게”(4) 되기 전에, ‘지금’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에 응답해야 한다. 기회는 언제나 있지 않다. 내 코의 호흡이 오늘 밤 이 세상을 떠나 지옥@천국에서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잠이 든 사명자, 그는 깨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