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새벽 | 고후9.1-15
헌금하기(3) - 열 매
준비하기(1-5)
‘성도를 섬기는 일’에 있어 고린도교회는 탁월한 모범을 보였다. 바울은 자신의 자랑이 빈말이 되지 않고 실제로 고린도교회가 ‘성도를 섬기는 일’(구제헌금)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 디도와 한 형제를, 그리도 또 다른 한 형제를 제정위원으로 파송하였다(3a, 8.16-22).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이미 약속한 헌금 준비하기를 기대했다. 그렇다. 준비된 헌금이 아름답다. 헌금은 단순히 물질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섬김이라는 사랑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열매맺기(6-15)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심는 자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7b) 앞 문장이 ‘즐겨’라는 단어로 시작된다는 것에서도 하나님은 헌금을 마지못해 억지로 내는 자가 아닌 온 마음으로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는(뿌리는) 그런 심는 자를 의롭다 하시며, “그의 의가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라 말씀하신다(9, 시112.9). 이렇듯 바울은 성경에 흐르는 ‘심는 자’(성도를 섬기는 일) 사상을 꿰뚫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미래적 소망인가: “심는 자에게 씨(심을 것)…를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10)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주목하시며 가난한 자들을 향해 하나님이 주신 것을 또 다시 ‘심는 자’에게 변함없이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사55.10 참조)시다.
어디 그뿐인가. 이 풍성한 열매를 통해 드려지는 ‘너희’의 부요한 헌금은 마침내 이 헌금을 전달하는 ‘우리’를 통하여 ‘저희’(예루살렘교회)까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적을 일으킨다(11). 바로 이 ‘심는 자’들이 하는 일이 곧 [봉사의 직무], 그러니까 봉사의 ‘디아코니아’(이 단어가 5.18절에서는 직책으로 번역됨)다.
그럼 이 섬기는 직은 무엇을 이루는가(12-14). 먼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채움으로써 서로 평균케 한다(12a, 8.13-15). 또한 이를 통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넘쳐나게 한다(12b). 동시에 이것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과도 함께 나누는 심는 자로서의 섬기는 직(職, diakonia)을 감당하는 것을 인하여 예루살렘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할 것이다(13). 넷째로,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는, 기도로서 섬기는 자 되게 한다(14).
이어지는 후렴구와 같은 15절은 지금껏 이야기한 헌금신학에 대한 일종의 찬양송이지 싶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여기 은사(dorea)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요4.10)이라 말씀하실 때, 또한 성령을 ‘선물’(행2.38, 8.20, 10.45, 11.17)로 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바울은 지금껏 이야기한 [구제파일](8-9장)의 결론을 ‘왕의 하사품’(gift)으로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이 심을 것을 주사 많이 심는 자로(10), 그것도 즐겨(선뜻 행하는, 7b), 그 결과 너희와 저희와 우리까지 모두가 다 섬기는 봉사를 하는 선물을 주셨으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마땅하다. 시너지 효과(the synergy effect)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것 아닐까. 너희가 우리로 말미암아 저희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저희만이 아닌 모두에게 다같이 [봉사의 직무](섬기는 봉사)라는 스펙트럼을 맛보게 한다. 이것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은사(선물, 하사품)라는 찬양에 들어있는 넉넉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