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99새벽 | 대하 20.1-37
여호사밧[4]: 승리 뒤에 찾아온 위기
기도(1-13)
길르앗 라못에서 벌어진 아람전쟁에서 하마터면 아합에게 끌려들어가 전사(戰死)할 뻔하였다. 하지만 아하시야의 ‘그러므로’(19.2b)를 하나님은 ‘그러나’(9.3)로 잇게 해 주셨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유다를 내적(內的)으로 개혁하고 있는데 외적(外的)으로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유다를 침입해 온다. 여호사밧은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유다 전역에 금식하며 구국기도회로 모이기를 요청한다(3-4). 먼저 여호사밧은 아브라함(7)과 솔로몬의 성전언약(8-9; 6.28-31, 7.12-16 참조)에 호소한다: “우리가 이 성전…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9b)
무릇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를 모으고, 전쟁에 필요한 것들을 점검하며 싸울 준비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유다는 금식하며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드고아대첩(14-30)
기도 이후가 아름답다.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어져서다. 놀라운 것은 전쟁은 이미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할 것이 예고된다(17). 이에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백성들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한다(18-19). 이런 전쟁도 있을까. 한편 여호사밧은 이미 승리‘한’ 전쟁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는데 이를 의심 없이 실행에 옮긴다. 전쟁인데 보라! 전사들의 행렬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21)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의 행렬이다.
하나님은 이 찬송(노래)이 시작될 때 모압과 암몬 연합군과의 드고아전투(20)를 승리케 하신다(22-23). 전쟁이 승전가로부터 시작되고(21), 동시에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26). 뿐만 아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개선 행렬 또한 영광의 찬양이다(28). 나라 안으로는 종교개혁, 나라 밖으로는 전쟁의 승리, 그리고 이런 와중에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흐른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 중심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이게 유다다.
통치 평가(31-37): 25년
여호사밧은 35세에 왕위에 올라 25년을 통치한다(31).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왕으로서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소임(청지기)을 감당했다(32). ‘그러나’ 역대기는 두 가지 약점을 분명히 한다. 하나는 통치 초기에는 산당을 제거하였으나(17.6) 후에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33)다.
다른 하나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인 북왕국 아하시야와 화친(교제)을 맺고 서로 연합(합작)하여 배를 만들었으나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37)는 엘리에셀의 예언대로 배가 부서진다. 이렇듯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과 우상을 섬기는 것, 그리고 악한 자들과 함께 동업(연합)하여 일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아마도 죄와 악이 이런 것들을 통해 침노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으신 듯하다.
1패전(敗戰)과 같은 아람전쟁(18.28-34)을 기억하라! 죽을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끝내 다시 만회할, 이어갈 것이 사라지고 없어질 수도 있었다. 북왕국 아합은 이 전쟁에서 전사하고 끝이 났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도우셔서 패전이지만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20장이다. 이처럼 실패를 교훈 삼아 그 이후를 바르게 이어가는 자는 복되다. 여호사밧은 실패 뒤에 찾아온 승리와 회복을 통해 역대기 독자들에게 소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