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새벽 | 눅2.21-40
은혜로 자라온 12년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짤막하게 소개된다. 한편에서는 구약의 예언이 마침내 성취되고 있음을 율법 준수로 이를 확증한다(부모, AA’). 앞서 누가는 그리스도(메시야)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1.26-38), 그 예언대로 출생하였고(2.1-7; 미5.2), 이때 천사들과(2.10-11,13-14) 목자들이(2.15-20) 하나님이 이루신 임마누엘의 영광을 찬송하는 이 모든 것이 구약의 성취라는 흐름으로 전해 주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두 선지자(시므온, 안나) 역시 그리스도의 나심을 성령 안에서 찬양하고 있다. 이는 유독 ‘율법’을 이루는 일에 집중하는 예수님의 부모와 대조적이다. 이는 예수님이 구약을 성취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을 것을 바라보게 한다.
예루살렘(21-39a): 율법을 성취하다.
A 부모 - “모세의 법대로”(22a)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23a)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24a)
X 시므온 & 안나 - “성령”(25b,26b,27a; 38)
A' 부모 -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27b)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39a)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랑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7-18)
율법의 촘촘함 안에 성령의 생동력이 고동친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더 이상 죽어있는 법조문이 아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구습이 아니다. 율법의 틀 안에 자유롭게 비상하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이 빛난다. 예수님의 부모(요셉과 마리아)는 이미 성령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 예고(수태고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다른 누구보다 성령님께 가까이 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일에 솔선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듯 구약(예언)의 성취로서 오신 분이라면 먼저 율법이 말하는 바에 흠이나 티가 있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시므온,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25)인데 죽기 전에 그리스도(메시야)를 볼 것이라는 성려의 지시를 받아 메시야를 기다리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 그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한다(26-28 → 29-35). 또한 여선지자 안나도 예수님에 대하여 장차 예루살렘을 속량할 분이심을 증거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린다(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