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새벽 | 눅4.31-44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시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의사다. 그럼에도 그는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 목격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1.1), 병자를 고치시고 치유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한다. 이것은 앞서 지금 읽으시는 곳을 특별히 찾으셔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4.21)는 이사야 61장의 말씀이 이처럼 성취되는 것이어서다(4.16-20). 그렇다면 지금 온갖 병자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모습이라는 뜻 아닌가.
더러운 귀신을 쫒아내다(31-37).
온갖 병자들을 고치시다(40-41).
앞서 주의 성령이 임하신 예수님을 통해 이사야 61장 말씀(4.16-20)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4.21)는 예수님의 선포가 지금 이처럼 실상이 되어지고 있다. 특별히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께서 꾸짖으시매 소리 지르며 나가는 장면들(33-36,41)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과, 동시에 사탄의 나라는 점점 멸하여지는 것을 보게 된다.
한편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치는 것을 보라: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34b,41) 하지만 비록 귀신들도 그리스도를 알고(34b,41b), 저들도 믿고 떨고 그런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저들은 멸망 당해야 할 자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최후가 곧 임박한 것을 알고 이처럼 발악하는 것이다. 저들은 말만 하는 자들이고,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바대로 살지 않은 악의 축이다. 자신들이 알고 믿고 고백하는 것처럼 살려는 마음은 하나도 없고, 단지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까에 있을 뿐이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다(38-39).
누가복음에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는 일이 먼저이고(4.38-39), 이어서 베드로가 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부르심이 이어진다(5.1-11). 이 두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몇 가지 유의미한 묵상을 해 볼 수 있다.
베드로는 갈릴리에 전파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과 예수님의 3중사역을 직간접으로 듣고 보고 있었다. 지금 당시로서는 거의 사망에 이르는 ‘열병’이 든 자신의 장모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았고, 이를 위해 자신이 사는 집에 예수님이 방문했다는 것을 이 일이 있는 후에라도 전해 듣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고기 잡은 일에, 그물을 씻는 일에 몰두할 뿐 “무리들이 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5.1a)라는 자리에 가 있지 않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갈릴리 → 베드로의 집(장모) → 게네사렛(갈릴리) 호숫가와 무리들에게까지 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다. 어쩌면 베드로의 배를 강단(설교단) 삼아 몰려온 무리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도 어느 순간 베드로를 그 자리에 들어오도록 하시기 위한 계획이었을 것도 같다(5.2-3).
그렇다면 베드로(시몬)의 집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으나, 정작 베드로에게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미 시작된 그 나라는 베드로를 찾아갈 것이고, 그 역시 복음을 듣고, 그렇게 되어지자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인생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