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542새벽 | 예수님이 답이다(눅7.1-17).

542새벽 | 7.1-17

예수님이 답이다.

 

백부장: 들음에서 믿음으로!

백부장은 자신이 당면한 문제의 해답을 예수의 소문을 듣고”(3a)에서 찾는다. 문제는 그가 듣고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들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본문의 절정은 바로 9절이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b)

믿기는 가버나움 노중에서, 그것도 백부장이 믿었다. 그런데 이루어진 역사는 병든 하인이 머물고 있는 백부장의 집에서 성취된다.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던 하인이 백부장의 믿음 때문에 살아난 것이다(9). 내가 지금, 이 시간, 이곳에서 기도하는데 이 기도가 저 곳, 저 사람에게서 응답된다. 바로 지금 남편에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친구에게서 응답되기도 하고, 오래 전에 기도했던 기도제목이 이미 내 안에 이루어진 것을 믿음으로 발견케 된다.

 

과부의 아들: 사랑은 절망 보다 강하다.

이 두 기적(백부장의 종 치유, 과부의 아들 살림)은 묘한 비대칭이다. 앞은 백부장의 믿음이 종을 고쳤다고 하면, 뒤는 아들을 살리는 일에 과부인 어머니의 일은 없다는 점에서다. 죽은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부를 주께서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고 하시고”(13) 관에 손을 대신 후에 청년아 일어나라하시자 죽었던 자가 살아난 게 전부다(14-15). 그러니까 위 백부장과 비교했을 때 죽은 아들을 위해 과부인 어머니가 한 일은 없다.

어쩌면 우리는 그래 믿음만 있으면 다 되!’라는 믿음만능주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은 인간의 믿음이 있어야만 그것을 근거(기초)로 무엇인가 일을 하시고, 믿음이 없거나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행하실 수 없는 분이신가. 결코 그렇지 않다. 주님은 독자 아들이 먼저 죽었고, 그러나 이를 예수님이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주님께 간구하고 외친 과부의 믿음을 보시고 죽은 아들을 살리신 것이 아니다. 단지 슬픔과 절망과 탄식과 눈물에 잠겨 장례식을 치르는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죽은 아들을 살리셔서 그녀의 품에 다시 주신 것이다.

 

백부장은 축복의 통로다. 자신도 살고, 하인도 살고, 이 사건을 목격한 모두가 산다. 나의 믿음이 너를 살린다.’는 이 놀라운 진리가 빛이 되어 임하는 걸 보라. 하지만 이 생각(기초)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이어지는 기적에서 다시 중심을 잡는다. 이것은 과부의 믿음이 죽은 아들을 살리는 기적이 아니어서다. 생각해 보라. 나의 믿음이 너를 살린다는 것이 주님과 상관없이 단지 나에게 그런 믿음이 있다는 것으로, 그것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주님이 없어도 나는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예수님과 분리된 믿음은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믿음이 늘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그러니 내 믿음은 네 믿음과 차원이 다르다고, 나의 믿음은 1등이라고, 그래서 다름 사람들 무시하고, 정죄하고, 자기가 잘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칼로 쓰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악질적 사유화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자기의 사리사욕과 욕망과 육체를 위해 사용하기에 급급하며 살아간다.

백부장마저도 자신의 믿음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인을 위해 주님이 인정하시고 사용하실 수 있는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믿음이 있어야만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일의 결정권과 주도권은 믿음을 가진 백부장이거나, 죽은 아들을 인하여 얼마나 슬퍼하고 아파하느냐에 있지 않다.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 주님께 있다. 나의 믿음은 우리 주님이 사용하실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믿음일지라고 이 믿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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