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1새벽 | 눅14.25-35
제자도(Discipleship)
제자, 그 부적격 사유들(26b,27b,33b).
제자의 맛을 내려면?
'수많은 무리'(25a) → 제자? No!
그럼 누가 제자인가?
이제는 단순히 ‘밭과 소를 사고, 또 장가를 들었다’(18-20)는 이유 때문에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수준의 문제를 넘어 보다 더 근본적인 결단과 헌신을 요구하는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 주님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제자됨의 조건이 된다거나, 혹은 제자로서 결단해야 할 모든 것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13.23-28 → 14.25-27,33).
그럼 누가 제자인가. [1] 자기 가족은 물론 자기 목숨까지도 제자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26). 제자란 가정(가족)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제자로 살아가는 일에 언제나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2]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자다(27). 결코 평안하고, 가정에 아무런 장애(문제)가 없도록 해 놓고서야 비로소 제자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선 곳에서 만난 삶의 모든 ‘자기 십자가’를 진 모습 그대로 주님을 따르는 자다.
[3] 제자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33). 이 세상의 유한한 것이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무소유(無所有)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소유는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제자는 소유에 집착하거나, 소유가 짐이 되거나, 그래서 자기가 소유한 것 때문에 제자로서의 행동반경이 제한받지 않는 자로 살아야 한다.
제자는 자기(self)에 얽매이는 자여서는 이미 맛을 잃은 자다. 관심과 삶의 중심이 자신이 아닌 주님(Lord-centered)인 자가 제자다. 제자의 윤리는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권리)까지도 때로는 포기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유익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제자도(Discipleship)를 수단으로 삼지 않아야 하며, 오직 제자로 부르신 자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사는 차원까지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세상의 건축가나 전쟁을 하는 자도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를 살피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예수꾼으로서의 제자인 자들이랴.
나는 주님을 따르는 것 때문에 무엇을 미워하고 버렸으며, 지금도 그러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미워하고 버린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가고 있는가.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7) 말씀하셨다.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쪽보다는 나 같은 자를 제자로 써 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열정 넘치는 제자로 서는 게 중요해서다. 내가 주님의 제자라면 내게서도 주님의 향기가 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님이라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자라야 할 소명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