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새벽 | 출1.1-22
이스라엘 - 350년 애굽史
350년약사(三百五十年略史, 1-14, 12.40)
22절에 불과한 1장은 시간적으로는 350년이라는 세월을 담고 있다. 모세의 왕궁수업 40년과 광야생활 40년을 기록하고 있는 2장의 80년을 포함해서 入애굽의 역사가 430년임을 감안할 때 그렇다(12.40, 행7.23,30). 장정만 60만 명인 이스라엘이 되기까지 4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렸다: 1(1.1, 야곱) → 70(1.5, 가족) → 600,000(12.37, 민족)
이 장구한 세월동안 이스라엘은 애굽에 동화되어 없어지지 않고 민족으로의 정체성을 보다 굳게 지킨다. 율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율법은 430년 후에, 그러니까 出애굽을 한 후에 주셨다(출19.1- , 갈3.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으며, “요셉을 알지 못하는”(8a), 아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셨다.
마침내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성취되고 있다(창15.5). 중요한 것은 야곱, 그리고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6)어도 하나님의 꿈은 중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축복은 위기와 고통을 동반한 것이었다(8-14). 이스라엘을 향한 애굽의 학대는 “괴롭게 하여 … 엄하게 시켜 … 괴롭게 하니”(11-14)로 점차 가중된다.
하나님이 있다(15-22).
마침내 애굽(바로)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발벗고 나서 가로막기 시작한다. 태어나자마자 아들이면 죽어야 하는 이 처절한 시련이 계속되고 있는 그 순간에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굽化’ 되어갔겠지만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안약의 성취를 보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17) 사는 사람들 말이다.
무려 350년이나 계속되는 핍박과 환란이라는 영적 전쟁터에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의 편이시다(20-21). 아직은 비록 핏덩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할 백성들로 자랄 자들과 자신들의 생명을 바꾼 자들을 어찌 하나님이 모른다 하실 수 있으랴. 내 삶의 보고서에 무엇이 채워져야 할 것인가를 산파들에게서 배운다.
구원받기 이전의 이스라엘의 형편이 눈물겹다(8-22). 무려 4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하나님을 두려워하여”(17) 살아가는 사람들로 애굽의 무자비한 폭력을 이겨내고 있다. 애굽은 요셉이 잊혀지는 것과 함께 하나님 잃어버리기에 급급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6a)들로 더불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1장의 이스라엘이 위대해 보인다. 모세와 같은 지도자도 없고, 율법도 있기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과 다르게 살았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바로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공존한다. 바로의 법을 어길 때 당장 불이익이 따라오고,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것은 삶의 무대에서 언제나 만나는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 세상과 역류하며 사는 사람들, 당장의 편리함과 생존을 위해 영원한 축복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다들 적당하게 살아가는데 나 하나 다르게 산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까 라는 유혹을 이기며 사는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산파처럼 살았음에도 애굽이 가나안처럼 되지 않아도, 여전히 애굽은 애굽이어도 상관없다. 이 처참한 애굽생활은 그럼에도 아직 80년을 더 견디어야만 한다. 이것이 산파처럼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