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주일 | 수5.1-15
요단 그 이후: 하나님이 하신다.
할례(God→Joshua) -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유월절(이스라엘 자손들) -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정복 출정식(여호와의 군대장관/God→Joshua) -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구조]
애굽
모세 – A 소명(출3.5- )
B 유월절(출11.21-28)
C 홍해(출14.1-31)
여호수아 - C’ 요단(수3.1-17)
(할례, 수5.2-9)
B’ 유월절(수5.10)
A’ 소명(수5.13-15)
가나안
정복을 위한 영적 준비들
이제 가나안 정복을 위해 이스라엘이 해야 할 준비는 무엇인가. 이제 뒤는 요단이고, 마침내 그 요단을 건넜고 앞은 정복해야 할 약속(언약)의 땅 가나안(여리고)이다. 그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곧 전쟁, 즉 가나안 정복전쟁이다. 그렇다. 이제 이 전쟁을 준비할 때다. 그러려고 요단을 건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일은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시는 것으로 준비가 시작된다. 하지만 잘 보면 놀랍게도 이것은 전쟁과 관계가 없다. 오히려 전쟁을 위해 하지 않아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스라엘(여호수아)로 하여금 하나님이 준비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전쟁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할 례(2-9): 이런 몸 상태로 전쟁을 하도록 한다면?
할례는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에 하나님과 아브라함(이스라엘, 창17.1-14) 사이의 언약의 보증이자 증표다.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 부담이자 자칫 자멸(自滅)을 자초하는 미련한 행위일 수 있다(창34.24-27). 그렇다면 할례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이 적진이 코앞인 곳에서 할례를 행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기에 그렇다.
물론 하나님께서 요단을 건너게 하신 일을 통해 이웃 나라들의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게 하는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셨지만 …. 결국 이스라엘이 안전한 것은 군사력이나 당장 나가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이스라엘은 이를 믿음으로 응답한 셈이다.
요단 그 이후, 할례를 행한다. 무엇인가. 1절의 가나안 7족속들이 지켜보고 있어도, 그래도 우리가 할례를 행하여 꼼짝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전쟁을 일으켜 저들이 처들어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언약을 지키며, 아브라함의 언약이 지금 요단을 건넌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있는 언약임을 믿는다 선언한다: ‘전쟁보다, 목숨보다, 이스라엘보다, 우리가 사는 것보다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습니다.’
유월절(10-12): 하나님이 전쟁을 주도하신다면?
유월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곧 시작될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어린양의 보혈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유월’(passover, pesach)하지만 그러나 이 보혈과 상관없는 가나안의 백성들은 다 심판하실 것이다는 메시지다. 이것이 여리고성 전쟁에서 기생 라합과 그 집에 있는 자들은 심판이 ‘유월’하지만 그러나 모든 여리서 백성들은 다 심판을 받는 것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요단 그 이후, 유월절을 지킨다. 무엇인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언약의 성취를 위해 일어서는 자는 여호와의 심판이 유월할 것이고, -우리는 이를 여리고 정복 가운데 라합과 그의 집에 모인 가족들에게서 경험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은 바로와 온 애굽의 초태생과 장자들이 죽음을 맛본 것처럼 여리고와 가나안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출정식(13-15): 하나님이 앞서 행하신다면?
이제 정복을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준비시킴으로써 거룩한 출정식을 마무리한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소명이다(13-15): “…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15) ‘신을 벗으라!’(15)는 말은 무엇인가: ‘여호수아, 너는 나의 종이다.’ 결국 여리고성을 시작으로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는 전쟁을 종으로서 순종하는 것이다.
마침내 주의 군대장관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을 위해 이스라엘 군대를 총괄하고자 친히 내려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나안 정복은 단순히 영토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의 실현이라는 원대한 목표가 성취되어지는 하나의 성전(聖戰)인 셈이다. 이로써 정복의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이 정복 전쟁은 하나님이 앞 설 것이다.
요단 그 이후,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앞선다. 무엇인가. 이 가나안 정복전쟁은 여호수아가 앞장을 서서 진군해 들어가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앞서 길을 내시고, 430년 전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창세기 15장의 ‘땅’에 대한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나 하나님이 앞서 행하시는 일과 사람들에게 선행된 하늘의 사건이다.
전쟁을 앞에 두고서도, 여리고 앞에서 할례를 행한다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것일까.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즉 믿음이 없이는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같은 방향으로 따를 수 없다. 이것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승리케 하실 것이다.”는 어떤 전제와 조건을 걸고도 아니다. 그냥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주저없이 순종한다. ‘하라’ 하시니까 그냥 그대로 한다.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의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할례는 그 실상을 드러나는 순간이다: ‘오직 하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