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새벽 | 출9.13-35
재앙⑦ - 우 박
하나님은 비교적 소상하게 여섯째 재앙과 관련된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전달해 주신다(15-17). 또한 일곱째 재앙을 피할 길까지도 제시해 주신다(18-21). 그럼에도 바로의 변덕스러움이라는 병은 “그러나 … 다시 범죄하여”(32,34) 좀처럼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언행일치(言行一致, 13-26)
여섯째 재앙으로 끝낼 수도 있으셨다는 하나님의 뒷이야기(15)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러시면서도 바로에게 “너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구나!”(14)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바로의 진짜 병(病)은 자신의 주인을 모른다는데 있다(16).
또한 하나님은 한번 작정하신 일에 대해 변함이 없으시다. 이번에는 우박을 통해서다(18). 목표는 들판에 있는 것들이다(19). 하지만 재앙을 피하려면 생축은 물론 사람들까지 집에 돌아와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신다. 만약 그렇지 않고 그대로 들판에 있으면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21)에게 예비된 고통을 받을 수 밖에 다른 길이 없다(22-25).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20), 그가 비록 바로의 신하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우박으로부터 면제되었다(20a,26). 이것은 재앙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애굽으로 하여금 알게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14,16). 결국 재앙이 자꾸 가중되는 것은 바로가 하나님을 아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7,12,35).
언행상반(言行相反, 27-35)
바로의 변덕스러움, 급하면 ‘이번은’(27) 하나님 찾고, 그러다가도 ‘그러나’(32) 대안이 있을 것 같으면 ‘다시’(34)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바로처럼은 살지 않아야겠다. 정말 바로가 자신의 죄악(罪惡, 27)을 알았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재앙을 중단시키는 분이심을 믿었다면(28-29) 그는 달라졌어야 옳다. 얼른 보면 신앙이 좋은 것 같은데 -바로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27)처럼- 어떤 사건을 치르는 걸 보면 세상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바로와 같은 편엔 서지 말자.
우박이 휘몰아쳤음에도 “상하지 아니하”(32)고 남아있는 것이 있어서 조금만 살 틈이 보이면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34)는 바로에게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 할 수 만 있다면 하나님까지도 수단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생들의 더러운 죄를 본다.
바로와 내가 다른 게 뭘까. 그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다. 분명히 바로처럼 산 적이 많았음에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리에 앉아 있고, 바로는 어느 날부터 미끄러지기 시작하더니 마치 도미노(dominoes)처럼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그는 出애굽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3.1-10)를 보다 적극적으로 훼방하며,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일에 불행하게도 목숨을 걸었다.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 부르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로 부리는 것은 물론 생명을 파괴하는 일까지 자행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 셈이다.
마침내 바로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값을 치르기 시작하였고,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어리석은 일이었는가를 알아간다. 감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도전했고, 거기에 이런 일련의 자신의 언행이 부메랑(boomerang)이 되어 자신의 심장을 찌르기 시작한다.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그는 모세를 통해서 자신이 그 무엇보다 하나님과 대결하고 있는 자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