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657-58 | 위로의 하나님(사40.1-31)

657-58 | 40.1-31

위로의 하나님

 

지금껏 심판하시는 하나님(1-39)에 대해서 들었던 무수한 말씀들은 마침내 구원과 소망으로 반전되기 시작한다(40-66). 하지만 과연 유다에게 미래는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유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분이신가?

 

다시 희망 속으로(1-11)

인간을 향하던 심판은 39장으로 문 닫게 하신다. 그리고 마침내 내 백성을 위로하라!”(1)하시며 구원의 문을 40장에서 활짝 여신다. 심판의 때가 있었다면 이제는 위로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한편 영적으로 어둡고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오게 되는 용서는 죄 값을 치르는 것 없이 무작정 되는 것이 아니다(2).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기까지 이스라엘은 죄에 대한 형벌에 해당하는 복역(服役) 기간이 끝나야 했다(1-39). 이렇듯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한다.

하나님은 드디어 외치는 자(3-5, 3.4-6), 말하는 자(6-8, 벧전1.23-25),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9-11, 10.15)를 통해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소망을 드러내도록 하신다. 기쁜 소식을 알리는 전령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진다. 이들이 예비하는 것이란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을 증거하고 보는 일이다. 그러니까 새시대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나타나고(5), 또한 시들지 않는 말씀으로 영영히 설 것이고(8), 임하시사 친히 다스리시는(10), 바로 그 하나님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것이다(9).

마침내 하나님은 이미 명령하여 이제 닦아 놓은 여호와의 길’(하나님의 대로, 3)로 임하신다(10a; 3-5 9-11). 이는 2절의 결과다: “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렇게 해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5)는 바로 그 왕권을 친히 행사하시며 이제 다스리실 것이”(10b).

이 모습은 마치 시편 23편을 옮겨 놓은 듯하다(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안으시며 인도하시리로다.” 이처럼 끝나야 할 것이 끝났고’(2) 죄가 해결되면 이렇게 좋은 것을 죄 아래 있을 때는 미처 몰랐다. 그만큼 영원히’(8) 있어야 할 것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다스리고 계셔야(9-10), 그래야만 만물이 본래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다.

 

희망의 신학(12-31)

그래서 이사야는 곧바로 하나님을 찬양한다(12-26). 하나님은 홀로 온 우주만물(宇宙萬物)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때문에 전지(全知, 12-14)하시다. 이에 비해 열방은 한 방울 물 티끌 먼지”(15)에 불과하다. 무한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만드는 유한한 만물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비교할 그런 사이가 아니다. 피조물은 창조주 안에서만 그 의미가 있다: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17a) 하지만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3.5) 보려고 발버둥 치는지 모른다. 이게 죄()와 그에 따른 심판이다.

이렇듯 어리석은 인간은 헛된 우상과 유일하신 하나님을 착각한다(18-20).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할 인간이 하나 같이 다들 우상을 만들고 있다. 궁핍한 자도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고 있으니 이게 다 뭐하는 짓들인지 한심할 뿐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다시 한 번 이 모든 인간의 허물과 죄를 다 씻으실 하나님, 그분이 누구신가를 외친다(21-26):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25-26a)

 

이스라엘은 지금 어찌하여’(27)라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있다. 이건 분명 불만과 불평의 소리다. 죄는 이스라엘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에 실패하게 하였고, 그러자 하나님께 원인을 돌리면서 엉뚱한 투정을 부리게 만든다.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12-26)이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며(1), 영원한 말씀으로 이스라엘치기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안으시며 인도하”(11)실 준비를 시작하셨음에도 말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저들을 설득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피곤하여 지치고, 맥없이 비틀거리고 있음을 아신다(28-30). 하나님의 진단은 정확하다. 감동스러운 것은 마침내 하나님의 처방전이 공표되고 있음이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31a)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만이 희망이 있다. 하나님은 불신앙의 모든 영육(靈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얻으리니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31) 하신다. 그래 정말이지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이 필요하다. 우리가 만들어 낸 알량한 힘으로는 나를 유지하기도 벅차다. 그러니까 나 한 사람 지탱하며 살기도 버겁고 힘들다. 그러니 이제 내 백성을 위로하라!”(1)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며 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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