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새벽 | 사44.24-45.8
고레스 프로젝트(1)
바벨론의 몰락은 이미 예언된 사실이다(13.1-14.23, 21.1-10). 마침내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서곡(序曲, 44.24-28)처럼 외쳐지기 시작한다. 이제 한 사람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명되는데 그는 고레스다. “내 목자”(44.28a)와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45.1a) 자로 불리우는 그는 사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이다(45.4-5). 하지만 하나님이 쓰시겠다 하신다.
하나님의 약속(44.22-28)
出바벨론(43.1-44.23), 그런데 이 일이 왜 하필이면 고레스인가.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방인, 그것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45.4-5)이 예고되어야만 하는가. 어리둥절하다. 고레스가 예루살렘과 유다를 재건하고, 바벨론을 멸망케 할 것이다(28).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협의하고 이 일을 진행하시지 않는다. 그냥 일방적인 선포다.
고레스의 소명(45.1-8)
본문은 그가 태어나기 약 150여 년 전에 이사야에 의해 예언되었다. 첫째,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3)는 말씀에서처럼 하나님 자신이 이 일을 주도하시고 계심을 고레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둘째로, 고레스가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을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4a)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을 작정하신다.
셋째로,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리라.”(6a)는 목적 때문에 고레스에게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은 온 열방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그날을 꿈꾸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렇게 분명히 드러난다. 고레스(3) → 이스라엘(4) → 열방(6)이 하나님을 아는 날이 오는 것을 말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고레스일지라도 그를 들어 쓰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이 세상에 구원의 움이 돋게 하고, 공의(公義)의 싹이 나게 하신다. 일을 섭리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하나님이 고레스 자신을 쓰실 때, 그분이 하나님이신 줄을 고레스가 알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3b).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으로 결론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잘 되는 것이 복은 복인데 거기에서 끝나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처럼 하나님이 높이시고 잘 되게 하실 때 그 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 이것이 고레스처럼 쓰이는 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진리다.
이것만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어리석은 부자로 그 부(富)함을 끝내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눅12.16-21):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 영혼아 …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은 고레스 같은 자를 통해서 결국 이스라엘(‘나’)을 복되게 하신다. 세상을 사는 날 동안 꼭 고레스처럼 축복을 받는 고레스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고레스를 지명하여 부르셨듯이 고레스 같은 사람을 나에게 붙이시는 방식으로도 일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