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새벽 | 사54.1-17
이스라엘 Revival
귀환한(할) 이스라엘(52.7-12),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죄 없이 고난 받는 종(52.13-53.12)에 의해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될) 자들이다.
회복과 샬롬(1-8)
멸망으로 말미암아 이미 황폐하게 된 예루살렘(이스라엘, 52.9a)이 다시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과 회복에의 예고가 눈부시다(1-3). 고난 받는 종의 노래(52.13-53.12)에 이어 곧바로 회복의 노래가 외쳐지고 있음이 이제 펼쳐질 이스라엘의 미래가 누구에 의한 것인가를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름 아닌 하나님 때문이다.
사실 저들은 비유컨대 청년 때의 수치와 과부 때의 치욕으로 말미암아 남편을 잃어버린 채 홀로 된 여인들이었다(4-5a).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남편)에 의해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6)로서 ‘넘치는 진노’(8a) 아래 버려진 자들이다. 때문에 여인(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잉태(출산)하지 못하는(1), 그래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들에게 번성한 기업으로서의 회복이 약속되고 있다: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3) 이렇게 해서 지난 날의 수치와 치욕과 부끄러움이 물러가고 하나님(남편)과의 관계가 완벽하게 회복될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큰 긍휼과 영원한 자비에 기초한다. 더 나아가 ‘다시는’ 이런 악순환이 없을 것이 약속되고 있다(9-10).
샬롬과 보호(9-17)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이 회복되어(11-12) 하나님의 교훈이 서게 될 것이다(13). 그리하여 학대와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지고 의와 평강이 지배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14). 어디 그뿐인가.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치는 자는 패망할 것이며(15), 또한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게 될 것이다(17a).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의 평화(샬롬)에 대한 약속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해방을 뛰어넘는 종말론적인 예고이기도 하다.
나라의 틀은 물론이고(11-12), 미래의 기둥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고 세워질 것이라는(13), 나라 안의 평화뿐만 아니라(14) 또한 나라 밖까지 하나님께서 든든하게 지켜주실 것이라는(15-17)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눈부시다. 이게 다 남은 자들(51.1-52.12)이 받게 될 은혜의 열매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신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다윗언약, 그래서 그것만 믿고 탕자처럼 살았던 이스라엘에게 닥친 것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는 심판이었다. 이스라엘의 딜레마는 이것이다: “다윗언약의 하나님은 누구신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자체가 취소되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이미 깨어져 버린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4-6). 이미 아내라 할 수 없는 버림을 입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남편이라 하시며 저희를 찾아오실 것이다. 용서하고, 덮어주고, 다시 시작해 주시고, 모든 부끄럽고 수치된 것들을 다 없이 해 주시는, 그리고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7)라 거듭 말씀하시는 분, 그분이 이스라엘(‘나’)의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