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4새벽 | 사56.1-12
이방인(異邦人)도 OK!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아직 포로기에, 그러니까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이미 선포되고 있는 참으로 놀라운 복음(福音)이 아닐 수 없다.
이방의 법칙(1-8)
出바벨론을 통해 다시 入예루살렘 한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는 일이다(2, 58.13-14). 그런데 이 복(福,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속)이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과는 어떤 관계인가가 관심사다(3-7). 앞서 이미 살핀 것처럼 오실 메시야에 의해 이뤄질 종말론적 새로운 공동체는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들만으로 이루어진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이다(49.6-7,22-23, 52.15, 54.5b, 55.4-5; 요1.12-13 참조).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이미 이방인들 가운데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이 있음을 전제한다(3). 전통적으로 이방인과 고자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다(레21.20, 신23.2). 신약에서까지도 이방인이 구원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격렬한 논쟁이었다면(행10.44-48, 갈3.28), 구약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들에게 제한 없는 자격이 주어지고, 역시 저들에게 복이 선언된다(4-8).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단지 혈통에 의한 공동체가 아님을 선언하신다. 율법을 지키기만 한다면 이스라엘은 만민에게 개방된다. 이것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7b)의 의미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6b)과 ‘이미 모은 백성’(8)으로 구성된 새로운 공동체(이방인 + 이스라엘 = 만민)를 모으신다.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이방인이든 이스라엘이든 아무나 종말론적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는 복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가 이방인일 경우에는 하나님께 연합된 자여야 하고(3a), 안식일을 준행해야 하고(4,6, 언약 준수), 그가 이스라엘일 경우에는 포로기라는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남은 자’(51.1-52.12)로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지도자들의 실상(9-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뭘 계획하고 계시며 행하시는가를 알지 못하는 소경이자 벙어리 된 파수꾼들이다(10a). 파수꾼들이 자기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게을러 빠져서 영적 잠이나 자고 있다(10b). 또한 저들은 이런 형편 중에도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눈먼 ‘개들’이다(11). 무슨 말인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다. 모두가 다 ‘자기’만 있을 뿐이다. 이뿐인가? 술에 취해 방탕한 자들이다(12). 지금이 어느 때인가.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어 이방의 땅에 끌려온 게 아닌가. 오히려 이런 때에 하나님은 저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리려는 계획을 품고 계시는데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그것도 백성의 지도자들이라는 자들은 죄의 늪에 깊이 빠져 있으니 ….
명색이 파수꾼(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문제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11b), 이 더럽고 추악한 소득을 얻은 자들끼리 피차 술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이런 자들을 지도자들이라 할 수 있을까. 파수꾼들을 가리켜 저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10)이라는 하나님의 선고 앞에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로운가. 지금 바로 앞에 적군(敵軍)이 몰려오고 있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며, 설령 알았다 할지라도 외치지 못하며, 이런 위기의 순간에도 꾸벅꾸벅 졸며 잠이나 자고 있다면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