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4새벽 | 출15.1-21
구원의 노래
광야에서 시내산으로 가는 노정이 시작되었다(13.17 → 19.1). 마침내 이스라엘은 애굽(라암셋 → 숙곳, 12.37)에서 광야(에담 → 비하히롯, 13.20, 14.2,9)를 지나 홍해를 건넜다. 이제 광야는 40년 동안 신명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 무대다.
모세의 노래(1-18)
출애굽기의 첫 노래는 하나님 찬양이다(1). 그리고 그 찬양은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에 초점을 맞춘다(1-3). 노래의 배경은 당연히 애굽(바로)의 군대가 홍해에 수장된 사건이다(4-8). 같이 홍해 바다에 들어갔으나 이스라엘(모세)과 애굽(바로)의 운명은 같지 않았다. 한쪽은 승리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으나, 아마도 다른 한쪽은 죽음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19). 홍해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어리석게도 애굽은 헛된 생각에 빠져 있었다(9). 그랬으니 죽겠다며 바다에 뛰어든 것 아닌가.
그러나 주께서 저들의 오만과 교만을 바다로 덮으셨다(10). 이것이 모세(이스라엘)로 하여금 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 이유다(11-12). 사실 얼마나 창피하고 또 부끄러워했을까(14.10-12). 하지만 모세는 저들을 탓하지 않고 곧바로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간다. 골리앗과 전쟁 중이던 이스라엘, 그 중에 특별히 다윗의 형 엘리압의 다윗을 향한 멸시와 비아냥거림이 생각난다(삼상17.28). 하지만 골리앗을 물리치면 엘리압은 사라진다.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의 승리가 그렇다.
한편 모세의 출애굽신학(홍해신학)이 압권이다(13-18). 그는 지금 홍해 이후(13,17)를 아브라함언약의 빛을 따라 통찰해 낸다(창15.1-21).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것은 단지 살아남은 기적이 아닌 약속의 땅, 곧 ‘주의 거룩한 처소’(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 13,17)로 인도하사 저희를 다스리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는 점을 말이다.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놀랍게도 이 길에는 열방이라는 암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14-16). 하지만 열방은 애굽이 그러했듯이 “떨며 … 두려움에 … 놀라고 … 떨림에 … 낙담하나이다!”(14-15)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세상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이 이럴 수 밖에 없다 하시는 말씀이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미리암의 노래(19-21)
여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20). 모세와 이스라엘의 노래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의 노래가 이어진다. 죽음에서 살아난 자들이 부르는 노래였으니, 그것도 남편과 자식들 모두가 다 살아난 기적을 친히 경험한 자들이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고도 생생하게 감격스러운 노래와 춤을 추었을까. 아마도 멋진 감사예배(축하공연)이었을 것이다.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1a)
하나님을 향한 첫 노래(찬송)를 주목한다. 기적은 모든 불평과 염려를 바다에 다 잠기게 했다(14.10-12). 불평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이스라엘이 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오게 된 기저에는 변함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음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한편 변하는 환경만을 보며 이리저리 휩쓸리는 이스라엘을 보며 이들이 과연 열 재앙을 친히 목도한 자들인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더더욱 열 재앙을 치르고서도 모자라 다시 이스라엘(하나님)을 대적하겠다고 아우성인 바로와 애굽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