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8강: 주님은 순풍(順風)을 일으키신다.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19-07-03
성경본문
막3.7-35

5C9EEEB4-E2D9-4B9E-8DB3-492AABCDCF6D.jpeg

 

[04] 3:7-35

 

 

 

주님은 순풍(順風)을 일으키신다.

Mk. 3:7-35

 

 

관 찰

 

물러가시니 큰 무리가 따르며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A1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가 미쳤다

B

서기관들 -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예수님 -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A2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7b-8)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지나갔다(2:1-3:6).

하지만 예수님께는 그 이전과 이후가 별 차이가 없다(1:45, 3:7).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이었던 셈이다. 그러자 이제는 갈릴리에서뿐만 아니라 유대 전역, 그리고 두로와 시돈에서까지 주님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8). 점점 왕성하게 성장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감히 누가 막을 수 있으랴(20- ). 주께서 친히 속도 조절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44a, 3:12). 어떻든 위기 뒤에 이어지는 흐름이기에 이를 어떻게 끌고 가실지 이게 좀 궁금하고, 또한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큰 무리 중에서 열둘을 부르신다(13-19).

 

허다한 무리’(8) 가운데 열둘을 세우신다. 이로써 신랑을 빼앗길 날”(2:20)을 구체적으로 대비하신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집요한 발목잡기가 노도(怒濤)와 같이 휘몰아친다 해도 이에 상관하지 않으시고 복음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집중하신다.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나오듯이 주님은 열두 제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현존과 미래를 그리시기 시작하신다.

제자는 아무나 자원하는 식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매우 중요한 제자됨의 원리가 간결하게 소개된다. 먼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불러 모으신 다음에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따로 뽑으셨다(13-14a). 그리고 세우신 목적이 후술된다. 첫째,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신다. 둘째, 보내신다. 셋째, 전도하게 하신다. 넷째,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도 주신다. 한편 누가는 주께서 제자들을 세우시기 전에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6:12-13)다고 전해준다.

주님은 불어온 역풍을 제자들과 함께 감당하기를 원하셨다. 바다처럼 변화무쌍한 사람들의 심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갈 수 있으려면 마치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훈련시키듯 광야와 같은 유대 땅에 저들을 노출시킬 필요를 느끼셨는지도 모른다. 바리새인들은 역풍으로 주님을 거역하지만 주님은 복음(福音)이라는 순풍으로 유대를 품으시기 위해 제자들을 세우신 것이다. 위기와 혼돈과 갈등의 때에도 주님의 관심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었고, 저들과 함께 불어오는 역풍 안으로 들어가서 저들을 훈련하신다.

 

 

하나님의 가족(20-21,31-35)

 

주님은 계속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이제 이야기는 마침내 가족(친척)들까지 나서서 예수님이 미쳤다’(21)며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확대된다. 아마도 가족들은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나사렛에서 가버나움까지 먼 길을 왔던 것 같다(1:9). 그렇다면 지금 가족들 역시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예수님은 지금 역풍(逆風, 2:1-3:6)에 이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몰아붙이는 돌풍(突風, 22-30)을 일으키는, 거기에 가족들(21)까지 합류한 몹시 불안한 흐름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누구든지하나님의 가족이라 말씀하신다(34-35). 이것은 육적(肉的) 가족을 뛰어넘는 영적(靈的) 하나님의 가족에로의 초대가 갖는 보다 깊은 교훈을 바라보게 한다(10:29-31, 7:21, 1:12-13 참조).

세상은 자신을 참람(僭濫, 신성모독)하다 하고(2:7), 죽이겠다고 의논하기 시작하고(3:6), 귀신이 들렸다고 덮어씌우며 [마녀사냥]으로 몰고감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둘러앉은 사람들을 향해 누구든지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넓은 품으로 품으신다. 하지만 누구든지라는 주님의 은혜의 초청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임을 또한 분명히 하신다.

놀라운 것은 한 이야기(20-21/A1 31-35/A2) 안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하나의 액자(샌드위치, 22-30/B)처럼 집어넣음으로써 두 이야기가 결국은 하나의 교훈을 바라보게 한다. 이로써 이 단락(20-35)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22-30(B)에서 드러나고, 하나님의 가족(A1/A2)에 대한 이해 역시 하나님의 나라(B)에 대한 통찰에 의해 더욱 빛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22-30)

 

다시 서기관들의 역풍이 시작되는 듯하다. 이번에는 주님께 사탄이 붙었다는,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며 [마녀사냥] 식으로 공격한다(22). 참으로 섬뜩한 돌풍(突風)이다. 이렇게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30)는 덮어쓰기를 당하시면서도 주님은 저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신다(23-29). 저주하실 수도 있고, 분노를 넘어선 어떤 언행으로 저들의 저주성 독설(毒舌)을 단번에 꺾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씀으로 저희에게 설명하신다. 물론 이 비유 말미에는 [성령 훼방죄](28-29)는 결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한다는 경고를 하셨지만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탄의 나라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나라가 가까이 왔고(1:15) 그 나라가 지금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한 나라(집안)가 서로 싸워 갈라지면 망하듯이 사탄의 나라도 서로 싸워 갈라지면 오래 가지 못하고 망한다. 그렇다면 주님이 지금 싸우는 싸움은 [사탄 vs 사탄]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 자신은 사탄의 나라를 멸하기 위해 온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시야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계신다. 일이 이러할진대 이걸 사탄의 술수라는 식으로 얘기한다면 이거야말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거역하는 성령 훼방론자들의 술책(예수께서 성령의 힘으로 일하시는데 이를 귀신에 의한 것이라 폄하하는 것)이라는, 그렇다면 이들은 결코 영원한 죄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차제에 경고 받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어쩜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일까. [사탄의 나라 vs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전쟁 중이며(더 힘센 자가 사탄의 집에 들어가셨다. 27a), 과연 이 나라들의 향배는 어떻게 될 것이며(사탄을 묶어 놓고 그 집을 털어내신다. 27b), 또한 각 나라들의 편에 선 자들은 누구이며, 사하심을 얻지 못할 영원한 죄의 편에서 경거망동(輕擧妄動)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주님은 이 비유처럼 계속해서 당신의 정체(identity)를 감추고 계신다(1:44a, 3:12). 물론 이미 사탄의 나라를 주께서 결박하고 계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시고 계시지만 자신을 비유 안에 감추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밀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자라고 있다(1:28,33,37,45, 2:2, 3:7-8, 4:1,26-32). 복음은 살리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부스러기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1,32b)

 

성령 훼방죄(28-29)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7:51). 진리와 생명 되시는 구원의 하나님의 사역을 거절하는 것인데, 이것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렇다(고전 12:3). ,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함으로 하나님의 형벌을 초래하는 죄가 된다는 뜻이다(10:29). 이는 결국 용서 받을 수 없을 뿐더러 사망에 이르는 죄다(12:31-32, 12:10, 요일 5:16). 또한 바울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배교의 행위라고 말한다(6:4- , 10:29). 성령님이 임재하시사 함께 동행하시는 것을 무시하고서 마귀에 들렸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사하심을 얻을 수 없는 영원한 죄가 된다는 것을 차제에 깨닫도록 하시고 계신다.

한편 역시 주님이시다는 생각이 든다. ‘종의 섬김마저도 탐탁지 않게 여기며 딴지를 거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3:5a) 보시고서도, 또한 귀신 들렸다고 모함하는 자들임에도 그들을 불러다가”(23) 말씀하시는 주님의 문제 해결법과 위기관리 능력을 좀 더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수렁에서도 메시야 사역을 계속하시고(7-12), 제자들을 부르시고(13-19),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시고(22-30), 하나님의 가족을 모으시는 일을(21,31-35) 중단하지 않으시고 계속하신다(20).

참으로 놀라운 열심이시다(20). “근심하사 노하심으로”(3:5a) 반응하시지만, 귀신몰이 식으로 성령을 훼방하면 결코 사하심을 받을 수 없는 영원한 죄에 처하게 됨을(28-29)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무지렁이 같은 인생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길고 긴 사랑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계속해서 하늘 양식을 비같이 부으신다. 주님의 사역에도 이런 갈등구조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뜻언뜻 마음에 무겁게 남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주님의 이런 말씀이 생각나는데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5:21- )로 이어지는 말씀들 말이다. 속이 뒤집어지고, 정 떨어지고, 꼴도 보기 싫고, 울화가 치밀고, 스트레스 받아 불면에 시달리고, 대인기피증에, 뭐 이런저런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역풍들 앞에서도 주님은 자신이 당한 그대로 다시 갚아주는 식으로 일하시지 않으셨다. 이게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고, 항복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또한 주님처럼 살아야 되지 않을까. 자신을 죽이겠다는 역풍(逆風) 앞에서도 모두가 다 살 수 있는 상생(相生)의 순풍(順風)을 일으키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도 당신처럼 살아주기를 기대하시는 주님의 눈과 우리의 못난 눈이 마주치면서 말없이 바라보시며 말씀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또 보고 있다. ‘신앙하다는 살아감이 프리즘의 빛깔처럼 분광되어 만들어 내는 무수한 질문 앞을 주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오늘 또 다시금 주님을 바라본다. 참 힘들어 보이심에도 그분의 관심은 오직 사람을 살리는데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 들고서 한참이나 주님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뒤척이며 끙끙거리며 하루를 품고 있다.

     

20강: 바른 삶이 곧 참된 정결이다.

김충만 목사
20191023
막7.14-23

19강: 참된 정결을 생각한다(2).

김충만 목사
20191016
막7.1-13

18강: 참된 정결을 생각한다(1).

김충만 목사
20191009
막7.1-13

17강: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

김충만 목사
20190925
막6.45-56

16강: 영육(靈肉)의 양식

김충만 목사
20190918
막6.30-46

15강: 세례 요한의 죽음, 그 다음은?

김충만 목사
20190911
막6.14-29

14강: 예수님께 배척 당하는 게 더 비극이다.

김충만 목사
20190904
막6.1-13

13강: 믿음이란 무엇인가?

김충만 목사
20190828
막5.21-43

12강: 예수 쪽으로 걷는 사람인가?

김충만 목사
20190821
막5.1-20

11강: 다시 믿음을 생각한다.

김충만 목사
20190807
막4.35-41

10강: 천국이 비유 안에 보인다.

김충만 목사
20190724
막4.21-34

9강: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보라!

김충만 목사
20190710
막4.1-20

8강: 주님은 순풍(順風)을 일으키신다.

김충만 목사
20190703
막3.7-35

7강: 하나님의 나라를 거역하는 자들

김충만 목사
20190626
막2.18-3.6

6강: 복음의 역풍, 믿음으로 건너라.

김충만 목사
20190619
막2.1-12

5강: 갈릴리에 역풍(逆風)이 분다.

김충만 목사
20190612
막2.1-28

4강: 갈릴리에 복음의 파도가 일어난다.

김충만 목사
20190605
막1.14-45

3강: 예수님도 준비하신다.

김충만 목사
20190529
막1.1-13

2강: 마가복음 맥잡기(구조2)

김충만 목사
20190522
마가복음 1장

1강: 마가복음 맥잡기

김충만 목사
20190508
마가복음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