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724 | 삿11.23
2021.11. 3(수)/ 수요기도회
사사기 맥잡기
1. 서 론(1:1-3:6)
사사기의 분위기와 어조는 처음부터 암울하다. 한 쌍의 서론(1.1-2.5, 2.6-3.6)은 모두 여호수아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되며(1.1, 2.8),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을 쫒아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각각 끝이 난다(2.3, 2.23).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여호수아를 통해 주어진 이스라엘의 사명과 관련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유감스럽게도 가나안에 대한 완전정복 수행,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살아감이라는 두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 결국 모세와 여호수아의 ‘예고편’대로 역사는 흐른다. 이것이 서곡(序曲)이 품고 있는 사사기라는 씨앗이다: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2.3; 민33.55, 수23.13)
1.1. 이스라엘의 정복 실패(1.1-2.5): ‘올라가서’
1.2. 이스라엘의 우상숭배(2.6-3.6)
2. 사사들의 구원 이야기(3.7-16.31)
사사들의 구원이야기에서는 -아비멜렉을 제외하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6번 반복되는 순환(cycle)으로 제시되고 있다. 각 이야기는 등장 인물과 장소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편 12명의 사사를 등장시킴으로써 12지파가 공히 여호수아 이후의 가나안에서의 정복활동을 계속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특별하다.
하나님은 비록 연약한 인간 사사들을 사용하시지만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사는 여호와 한 분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도록 한다. 사사들은 한결 같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고루 지니고 있다. 어디 사사들뿐인가. 우리 역시 악하고 추한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함을 얻어 주께서 쓰신다. 사사기의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만나 주신다.
결국 사사들로서는 가나안이 평화(안전)로울 수 없다.
[사사기의 순환 싸이클(cycle)] -나선형으로 발전
이스라엘의 범죄(패역, 우상숭배): 배신
→ 하나님의 진노: 심판
→ 압제(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회개
→ 하나님의 평화: 구원
→ 이스라엘의 재범죄
3. 결 론(17.1-21.25)
이제 더 이상 반역과 핍박과 구원이라는 순환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주제 공식이 달라진다. 즉, 종교‧도적적으로 혼란과 부패의 고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를 보여준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 참고. 18.1, 19.1, 21.25)
3.1. 종교적 혼란(17.1-18.31): 미가의 이야기
3.2. 도덕적 부패(19.1-21.25): 레위인의 첩 이야기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21.25a)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삼상10.19a)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동시에 승리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창세기 3장 15절부터 시작된 이 거룩한 전쟁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완수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으나 아직 남아있는 옛성품(미정복)과 싸워야 한다.
이것이 성화의 거룩한 행진이다.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그러니까 가나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자동적으로 주어지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구약을 살았던 성도들이나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나 동일한 주제이다. 가나안이 하나님의 통치의 새로운 시작이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시작된 새로운 피조물됨의 은총 역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됨에 해당된다.
홍해를 건넌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수 밖에 없듯이(출14.13-14), 역시 가나안에 들어감 역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일 수 밖에 없듯이, 우리가 죄와 사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됨이라는 구원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사건이다(롬8.1-11).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사사기의 백성들이 이 은혜 아래서의 대가를 지불하며 살았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우리 역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이미 승리했으나 아직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저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5.8-9)는 베드로의 영적 통찰처럼 아직 남아있는 사탄과의 전쟁, 그것만큼이 구약(舊約) 사사기의 백성들과 신약(新約) 하나님의 나라의 성도인 우리가 동시에 싸워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