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39강: 성전 청결, 이를 무슨 권세로 하는지 알 턱이 없지?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0-07-08
성경본문
막 11.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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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수요 | 11.27-33

성전 청결, 이를 무슨 권세로 하는지 알 턱이 없지?

(맛있는 마가복음, pp.120-121)  

 

이런 일(성전 청결)

   ▪성전의 실상(구약)

      헛된 제물과 제사 1.10-17

      도적의 소굴 7.11

      성전문을 닫으라! - 1.6-10

        → 이 성전을 헐라!(메시야) - 2.13-22

구약은 참담하게 무너져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의 언행은 거침이 없다. 마침내 대제사장들은 변함없이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3.6 11.18a)를 꾀한다. 그것도 유월절 시즌에 말이다.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겉은 종교적인데 속은 사탄적인 것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두 얼굴의 사나이는 예루살렘에도 있었다. 여론에 밀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고(11.18), 결국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시비를 거는 것으로 마치 먹이의 허점을 노리는 야수처럼 다시 덤벼든다.

하지만 주님은 저들의 속셈을 아셨고, 이어 세례 요한을 예로 든 예수님의 질문과 바리새인들의 대답은 평행선이다(11.29-33). 한편 주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이처럼 몰아 붙이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본심을 훤히 드려다 보셨고, 이를 노출 당한 저희들의 반격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쪽으로 얘기는 전개된다.

 

질문 -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호산나!’를 외치는 환호와 함께 입성하신 것이며(11.1-11), 성전 청결과 그에 대한 백성들의 여론하며(11.15-18), 이런 것들이 기득권자들에게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11.28)라 묻는다. 그러니까 자신들은 준 일이 없다는 것이다. 불법이라는 얘긴데, 참으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성전의 주인이 오셨고, 더욱 성전 자신이 왔는데도 예수님에게는 이처럼 언행할 아무런 권위가 없단다. 웃기는 일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주님이 하신 일을 인정하면서까지 그것을 막아 보겠다고 할까.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고,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시비하고 있는 것이다. 꼭 이런 경우다. 언쟁을 하다가 승산이 없을 것 같으면 당신 몇 살이야?”로 가는 것과 같다. 사실 나이와 지금 터진 문제와는 별 상관이 없는데 궁하니까 무엇이 되었든 눌러 보려는 심보다. 주님은 이를 모르실 리가 없다. 그래서 역()으로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라고 물으시고 이걸 대답하면 당신도 저들의 질문에 답하시겠다 하신다(11.29-30). 참으로 절묘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다. 진리를 알아도 자기에게 불리하면 침묵해 버린다. 지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양곤마(兩困馬, 11.31-32)에 빠졌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을 하는지 저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도 직접적인 표현은 일단 보류하신다. 또 다른 시비의 빌미를 낳지 않아도 되는 주님의 방법이 탁월하다 싶다. 뭔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백성을 무서워하는, 그러니까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유리한 여론에 따라 춤을 추는 자들에게서 무슨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으랴.

 

질문(11.27-33)에 이어지는 대답,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12.1-12)가 참 절묘하다. 마침내 주인의 아들이 포도원을 방문하였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주인이 보낸 무수한 들의 가르침을 듣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왔고, 그런데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1210절처럼 쓰셨다. 놀라운 섭리요 역전이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기득권자들이 중심이 되어 온 이스라엘이, 온 인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여 저를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을 통해 포도원을 다시 새롭게 하신다. 그들에 의해 황폐화된 포도원을 허시고 새로운 길을 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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