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한 중보기도
수요기도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복음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린다.
북한선교를 위해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와 연합한 기도합주회라 할 수 있다.
100대 기도제목 가운데 오늘은 4, 9, 14, 31-35 기도제목을 함께 올려드렸다.
[2부] 맛있는 마가복음 강해(27강): 막9.1-13
220수요 | 막9.1-13(2)
변화산 사건이 주는 교훈들(2)
(맛있는 마가복음, pp.100-101)
산에서 내려 올 때에(9-13)
주님은 영광의 변화산을 뒤로하고 베드로가 그토록 싫어하는 산 밑으로 내려오신다. 지금은 산 밑으로 내려가야 할 때다. 하늘 영광만이 신앙 현장(무대)이 아니다. 주님은 산 위와 아래의 두 국면을 함께 주신다. 혹자들은 산 위의 영광만이 있어야 하는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 체험, 환상과 같은 것들이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해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의 경험에는 관심 없고, 오직 산 아래의 문제들만을 위해 신앙이 자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룹도 그 세력에 있어서는 만만치 않다. 사실 이러한 양극단이 한국교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영광은 잠깐이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경험하게 하시는 영광의 것들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영광을 경험하게 하신 것은 산 아래를 위한 것이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이 한결같이 영광에 취해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의 방향을 제시하신다. “이제 그만 산 아래로 내려가자!” 그것은 영광의 모습을 본 것이 끝이 아니라 산 위에서 본 영광을 산 아래에서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하는 메시지인 셈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cosmos, 우주)이다. 심판할 세상이 아니라 구원할 세상이다. 그래서 주님은 영광의 변화산을 뒤로하고 산 아래로 내려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산 위의 영광을 경험한 사람은 산 아래의 삶을 책임 있게 살아간다. 진정으로 영광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아직 혼돈과 탄식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을 무대로 삼아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내가 체험한 영광의 세계가 진짜임을 무엇으로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은 내가 그 영광을 어떻게 성취해가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면서 안다. 그러므로 내가 산 아래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산 위의 영광을 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면 내가 경험한 산 위의 영광은 가짜일 수 있다.
진짜 거듭난 사람, 진실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산 아래의 삶에서 그것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이제는 전실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8.34)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야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산 위와 산 아래의 간격만큼이 베드로가 넘어야 할 신앙의 숙제다. 어디 베드로뿐인가. 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