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

31강: 가정(家庭)을 흔들지 말라!(막10.1-12)

설교자
김충만 목사
설교일자
2020-02-05
성경본문
막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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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수요 | 10.1-12

가정(家庭)을 흔들지 말라! 

 (맛있는 마가복음, pp.108-109)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예수님은 지금 요단강 건너편, 그러니까 베레아 지방으로 가셨다(1). 물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32a). 한편 베레아는 헤롯 안디바의 관할 지역인데, 그는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불의와 불법의 사람이다(6.14-29). 요한이 앞서 이를 지적하다가 결국 순교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혼 문제는 여러모로 민감한 주제였다. 그렇다면 왜 바리새인들이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왔을까(2). 이미 모세의 율법을 다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4). 이것은 명백한 시험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불손한 의도 때문이지 진리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겠는가. 이 못된 버릇을 어찌 쉽게 버릴 수 있으랴.

이를 마가복음의 주제로 접근하면, 시험’(2)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3.35)로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메시야를 어떻게든 끓어 내리려는 불신앙적 적대 행위다. 이는 믿음과 상관없는 헛되고 악한 시험이다.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1-12)

주님은 차제에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다. 이혼증서를 통한 허용은 이혼이 타당하다는 것을 합법화시킨 것이 아니다. 이혼을 장려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락한 죄인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가정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더 강했다(5, 24.1). 주님은 모세의 율법을 사문화(死文化, 4-5)하지 않고, 또한 바리새인들의 계략에 말려들지도 않으시면서 결혼에 대한 가장 원형에 해당하는 창세기의 가르침으로 가신다.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2.24)

    

창조 시로부터 남자와 여자가 한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6-8). 따라서 죽음’(7.1-13), ‘음행’(5.32), 불신 배우자가 원하는 경우(고전7.15) 이 외에는 피차간에 서로가 상대방을 버릴 수 없다. 그럼에도 만약 이를 어기고 상대방을 버리고 다른 데 장가(시집)가면 이것은 간음죄에 해당한다(10-12). 왜냐하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9). 이것이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에덴에서 제정된 하나님의 법이다. 그런데 이 법이 모세를 빌미로 삼아 남자들의 합법적인 이혼의 도구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결혼제도를 만드신 분이 어떻게 이혼제도를 장려하실 수 있겠는가. 이런 억지는 없다. 결국 꿩 잡는 게 매다.”는 식으로 어떤 올가미를 씌워서라도 주님을 올무에 빠뜨리겠다는 바리새인들의 못된 심보가 드러날 뿐이다. 바리새인들은 시험을 목적으로 질문을 하였지만 그러나 주님은 창조의 원리에 따라 결혼과 가정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신다. 주님은 누구보다 가정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 우리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가정의 해체, 혹은 파괴가 아닐까 싶다. 2017년 한국의 이혼율은 혼인한 1000명당 4.4건이다.

이 세상이 만든 것들 가운데 완벽한 제도는 없다. 아무리 선한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입법 의도와 상관없이 악용되곤 한다. 비록 현실 세상은 이혼을 합법적인 제도 안에서 허용하고 있지만 성경은 이를 금한다(9). 그 이유는 둘이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8).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요 이혼은 사람이 만든 제도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제도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는 어떤 이유에서건 능가할 수 없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 안에서도 이혼은 현실이다. 말장난이 아니라 진짜 이혼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듯 흔들리는 가정을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탄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과 교회라는 두 신적 기관을 흔들고 있다. 가정은 이혼을 통한 가족 해체를 통해, 교회는 분쟁과 갈등을 통한 영적 권위의 부재케 하는 것을 통해서 각각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한다. 바리새인들의 교활함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헤롯의 반율법적 행동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 하지 않던 자들이 이 문제를 통해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그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가정이 깨지는 자들이 불쌍하고 가슴 아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이 주제를 들고 나왔다.

결국 아무리 봐도 희망은 오직 주님뿐이다. 결혼과 가정을 세우시고 지키실 분은 주님이시다. 주께서 가정을 지키셨듯이 우리 그리스도인 가정도 그렇게 살아야 하고, 주님이 에덴에서 시작하신 결혼의 신성함을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지키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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