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061주일 | 부활하신 그리스도(마28.1-15)

1061주일 | 28.1-15

부활하신 그리스도

 

때는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1a)”이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에 약속하신 죽으심 이후 3일이 되는 날이다(16.21, 17.22-23, 20.17-19). 이 날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도 두려워서 빌라도의 허락 하에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印封)하고 무덤을 굳게”(27.66) 지켜야만 했던 그런 날이다. 바로 그날 아침에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6-7a). 하지만 바로 그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지금 군병들과 결탁하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겠다고 야단들이다(11-15).

 

 

부활하신 예수님(1-10)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역시 단지 무덤을 보러 왔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온 것은 아니었다(1). 그녀들에게는 부활신앙이 없었기 때문이다. 좀 유감이다. 그랬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5), 그러나 그렇게 죽으신 모습으로 지금도 무덤에 누워 계신 예수님을 찾았다. 하지만 주의 천사는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6)다는 부활의 소식을 전하여 주었다.

이처럼 주님은 이미 부활하셨고, 이로써 이제 여인들의 사명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일이다(7-8). 이에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그 여자들이 큰 기쁨으로 달음질”(8)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려우면서도 기쁨에 넘쳐 제자들을 향해 뛰어가는 여인들, 주의 부활은 마침내 사람들을 이처럼 변화시키고 있다.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처음 만났을 때(1학년 여름방학)의 나를 생각해 보며 분위기는 비슷하다.

놀라운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주님은 먼저 이 여인들을 만나 주셨다. 그리고 첫 인사가 평안하냐?”(9a), 그러니까 샬롬!’이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주께서 제자들을 처음 만나셨을 때도 동일한 샬롬!’으로 문안하셨다(24.36, 20.19). 참으로 놀라운 순간이다. 하지만 과연 제자들은 이 인사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모두가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26.56b)였고, 베드로는 저주까지 하였고(26.74), 결국은 다시 고기를 낚는 어부생활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21.3).

그럼에도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며(13.1b),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제자들을 향해 평안의 인사를 나누신다. 동시에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내 형제들(10)이라 부르신다. 누구인가: ‘형제들이다. 내가 주님께 완전히 두 손을 다 들고 항복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 여기다. 아직도 나는 조금만 나와 다르면 얼굴 색깔부터 달라지는 못난이인데 주님은 넓은 팔을 벌리시고 사랑으로 품으신다. 이렇듯 탕자의 아버지시지 않은가.

 

 

적반하장(賊反荷杖, 11-15)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고 아우성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한심한 몰골이 얼마나 추한 모습인가.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을 믿지도 않았을뿐더러, 다른 사람들도 믿지 못하도록 흑색선전에 골몰한다. 주님의 저주가 꼭 맞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23.13)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이 있은 후, 그러고도 30여 년이 지나서 마태가 지금 이 복음서를 쓰고 있는 그때까지도 돈을 받고 회유된 군병들에 의해서 [시체도적설]이 유포되고 있었다(15).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러고도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행세하고 있으니 불쌍하고 부끄러운 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돈이면 모든 일이 자기들 마음대로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자들이 가장 위험한 자들이다. 그것도 대제사장들이 이런 생각을 언행(言行)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예루살렘 성전의 희망 없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 사람들을 찾으시는 모습이 압권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만나셔서 저희에게 평안하냐?”(9a) 안부인사를 하셨고, 무엇보다 제자들을 내 형제들’(10)라 부르신다. 결정적인 순간에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26.56b)였던 제자들이며, 그 중에는 주님을 부인하며 저주하기까지 맹세한 베드로도 끼어있다(26.70,72,74). 그런데 주님은 저들을 향해 내 형제들이라 하신다. 또한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잡으신다(10). 진정 한없이 높아 보이는 주님의 모습 아닌가.

부활의 역사성과 사실성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논리적 추론이 있다.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는 아직 예루살렘성전 멸망 이전이다(23.37-24.2).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성전은 AD 70년에 이루어졌으니까 마태복음 기록 연대는 그 이전에 되는 셈이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부활과 승천의 때는 대략 AD 33-35년을 전후한다. 그렇다면 어림잡는다 해도 주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30년이 지난 시점에 마태복음서가 기록되었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다. , 예수시대에 유다 전역에서 그분의 말씀과 기적과 공생애를 친히 목도하고 함께 더불어 경험했던 복음 현장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을 때 마태복음이 기록되었고, 그것도 주요 독자들인 유대인들에게 전해졌다. 특별히 26장 이후는 로마의 압제 하에 있는 식민지인 이스라엘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정치적이고도, 또한 종교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부분들이 다수 들어있다.

그렇다면 마태가 허위 사실을 유포했겠는가. 이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러므로 부활은 믿음의 영역이기 이전에 그보다 더 먼저 역사적인 사실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천년 된 복음서가 오늘 내 손에까지 전승되었다면, 그런데 만일 부활의 역사성이 거짓이라면 이스라엘과 로마의 역사 기록에 주님의 부활에 대한 반론이 기록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 역시 우리 손에까지 전해져 왔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부활이 신화다는 이설(異說)들은 18세기 인문주의 이후에 인간 이성에 의해 편집되었을 뿐이다. 예수 시대의 로마의 문헌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기독교가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말조차 없다.

부활의 주님이 이 아침에 우리를 찾아오셨다. 다시 고린도전서 15[부활장]으로 가 본다. 부활을 목도한 성도들 가운데 바울이 이 서신을 쓰고 있을 때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6)라고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활에 대한 바울의 복음이 찬란하게 빛난다. 그 가운데 몇 절을 다시금 내 마음의 창에 걸어본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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