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수요 | 막5.1-20
예수 쪽으로 걷는 사람인가?
(맛있는 마가복음, pp.58-60)
A1 갈릴리 → 거라사(4.35): 큰 무리
A2 거라사인의 지방(1): 한 사람
B1 광인 -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6)
B2 그들 -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17)
A1’ 거라사 → 갈릴리(5.21): 큰 무리
B1 광인 -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 이 한 사람만 예수께로 나아온다. 갈릴리에서는 ‘큰 무리’(4.1, 5.21)가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거라사 지방에서는 아니다. 오직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하나다(2). 이를 위해 예수님은 지금 거라사 지방으로 오신 것이다. 나에게로 오신 이유와 목적이다.
B2 그들(거라사의 사람들) - 그들은 예수 때문에 재산상 일어난 손해 때문에 예수께로 왔다. 급기야 여기까지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17)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있었다. 돼지 2,000 마리다. 이렇게 해서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은 예수님 쪽으로 걷는 것을 포기한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 쪽으로 끝까지 걷는 사람들과 어느 순간 그 길에서 이탈하고 미끄러져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길에서 점점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 거라사가 그렇다. 그럼 왜 거라사인들은 광인처럼, 믿음 쪽으로 걷는 사람들처럼 열매 맺는 풍성한 삶을 이루어낼 수 없었을까? 앞 ‘네 종류의 마음밭’(4.1-20) 비유에 그 답이 있다: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19b)
그렇다. 세상에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 사람들... 예수님과 돼지 2천 마리를 바꾸는 사람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넘어지기 쉬운 게 이것이다. 조금만 더 믿음 쪽으로 걸으면 100배의 결실을 맺는데 그 길목에서 그만 삐딱선을 탄다. 내가, 우리 가족(자녀)들이, 공동체가, 교회가 무엇 때문에 결실을 맺고(‘광인’처럼), 반대로 무엇 때문에 예수 밖으로 내딛는 발걸음을 포기하지 않는지(‘거라사인들처럼’) 네 마음이라는 밭을 말씀의 거울에 비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