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226주일 | 보이는 위기, 보이지 않는 섭리(행12.1-25)

1226주일 | 12.1-25

보이는 위기, 보이지 않는 섭리

 

베드로가 투옥된 것이 벌써 세 번째다(4.3, 5.19). 계속되는 고난이고 핍박이다. 지금까지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였지만 이번에는 세상 정치 권력자인 헤롯 아그립바 1(AD 37-44)에 의해서다.

 

 

헤롯 아그립바 1(AD 37-44): 죽이고 옥에 가두기까지,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그는 철저한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 유대의 분봉왕으로 재위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함으로써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 이를 통해 좀 더 수월하게 정치를 하겠다는 계산에 따라 행보하는 사람이다. 그는 전혀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야고보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서 베드로까지 옥에 가둔다(2-3). 그것은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3a)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그리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로 보건데 야고보 사도가 죽는 것을 기뻐하는 유대인이나(2-3), 그것을 보고서 더 악한 일을 계획하는 헤롯이나 다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헤롯의 계획을 꺾으신다(6-17). 이를 알 턱이 없는 헤롯의 무리들에게 소동이 일어난 것은 당연하다(18). 하지만 힘이 있을 때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 이렇게 사는 것은 헤롯의 자유인지는 몰라도 그 대가는 반드시 지불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으신다. 그의 사악한 처세는 자신의 미움을 사는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지만 자기의 연설을 듣고서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22)는 공치사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 결과 그는 주의 천사가 치니 곧 썩어 들어가는 몸을 먹는 벌레에 먹혀 죽고 만다. 자신이 신()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결과였다(23a).

 

 

위기를 기도로 품다.

 

야고보 사도가 죽고, 베드로 사도는 옥에 갇혔다. 이때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5). 이럴 때 나 같으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사도들에게는 불평이나 원망도, 두려움과 좌절도, 땅에서 구하는 해법찾기도 없다. 헤롯과 정치를 욕하고 비난과 비판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그럼 무엇인가. 오직 기도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저것 다 해 보고 마지막으로 기도라도 해 보자가 아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오직 기도만 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서의 기도가 아니다. 오직 기도만이 있을 뿐이다.

땅에서는 기도하고 있고(5), 하늘에서는 주의 사자가 일하기 시작한다(6-10). 놀라운 것은 베드로의 모습이다. 그는 깊은 잠을 자고 있다(6b). 그것도 천사가 그의 옆구리를 쳐 깨워야 할 정도로 말이다(7a). 교회는 기도하고 있고 하나님은 일하신다. 그러자 베드로를 매고 있던 쇠사슬이 벗어지고(7b) 모든 파수꾼을 지나 성문까지 저절로 열리고, 이에 베드로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마리아의 집에 당도하게 된다(8-12). 그때까지 교회는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베드로 자신도 환상으로 생각하고 있고(9b), 마리아의 집에 모인 교회도 역시 마리아의 집 앞에 서 있는 자를 베드로의 천사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를 영접하고서야 베드로가 주께서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들 앞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13-17).

흔히들 어떤 일을 만나면 기도만 하는 것으로 되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기도도 해야 하지만 뭔가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그것을 지금 하지 않고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는 일면 일리가 있는 충고들을 들을 때가 많다. 일면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기도도 하고, 사람이 해야 할 것도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베드로의 모습에서 뭔가 전혀 새로운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 동역자이자 같은 사도인 야고보의 죽음을 목도하고서 감옥에 갇힌 베드로였다. , 그렇다면 자신 역시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절망스러운 밤이었다. 그런데 천사가 옆구리를 쳐서 깨울 만큼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7).

무엇이 감옥의 베드로로 하여금 이처럼 잠을 자는 평안함으로 인도했을까. 정작 기도하고 있어야 할 사람은 잠을 자고 있고, 죽을지도 모른 위기 앞에 흩어졌어야 할 사람들은 모여 기도하고 있다. 베드로는 기도할 마음이 없어서 잠이나 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이처럼 평안할 수 있었다. 자포자기(自暴自棄), 혹은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아서가 아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맡긴 사람의 영적 자유함이 아니었겠는가. 이처럼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긴 사람은 겁날 게 없다. 사실 산다는 것이 뭐 무슨 욕심이나 자기 계획 같은 것으로 되는 것인가. 어차피 하나님의 섭리와 일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상 뭐 겁날 게 있고, 걱정할 게 있고, 조급할 게 있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러쿵저러쿵 할 게 있겠는가.

 

문제는 기도를 낳지만 기도는 그 문제를 해결한다.” 참 좋아하고 고백이다. 어찌보면 이러한 혼돈과 혼란의 와중에서 교회는 와해되거나 지리멸렬(支離滅裂)하다는 진술이 더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교회는 이런 풍랑과 고난 앞에서도 말씀은 힘있게 전파되고 믿는 자들도 많아지고 있음을 누가는 놓치지 않는다(24).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도 예루살렘교회를 구제하는 일을 잘 마치고 무사히 안디옥으로 돌아왔다(25). 한편에서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도행전의 역사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복음행전이라는 찬란한 역사는 세상 한 복판에서 중단됨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사도행전 12장은 사실상 [베드로행전]이 마무리되는 부분이다. 서서히 [바울행전]으로 교차되는 대목에 서서 베드로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순례자적인 신앙을 묵상해 본다. 12장에는 결국 이 세상에서의 생()을 마감하는 두 사람이 있다. 야고보 사도와 헤롯왕이다. 고생과 눈물을 따라 살다가 결국 순교의 제단에 드려진 야고보가 있다. 반면 로마의 임명을 받아 한 시대를 풍미하며 왕으로서 살다가 급사(急死)한 헤롯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와 저 세상에서 이 두 사람은 완벽하게 교차할 것이다. 한 사람은 당장은 최고로 성공한 것 같고, 또 한 사람은 보기에 따라서는 지지리 복()도 없이 고생만 하다가 죽은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찰나인 이 세상을 위해 저 영원한 세계를 포기하는 것만큼 더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게 또 있을까. 새하늘과 새땅에 펼쳐질 영광스러움을 위해 풀의 꽃과 같은 육신을 깃털처럼 가벼운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것, 이것이 사도들의 행전에서 붙드는 값진 인생보고서다. 헤롯은 죽음으로 영원히 끝이지만 야고보는 죽음으로 영원을 시작한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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