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285주일 | 묵상론(03) – 느헤미야의 묵상(느5.1-13)

1285주일 | 5.1-13

묵상론(03) 느헤미야의 묵상

 

1. 묵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

 

우리가 지금 시리즈로 다루고 있는 묵상(QT)론은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재발견되어 오늘에 이른, 그러니까 일종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말씀 회복운동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QT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이 말은 오해될 수 있다. 그러니까 성경에는 원래 묵상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또한 성경이 이 주제에 대해서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 역시 아니다. QT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통찰하고, 그래서 삶의 영역으로 그 말씀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 말씀과 생활을 통합해 내는 성경과의 만남이다. 이 점에서는 성경의 역사와 그 시간을 같이 한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1.2)

 

2. 느헤미야의 묵상(느헤미야 5)

 

[1] 관 찰(1-5)

느헤미야의 묵상은 백성들 내부에서 터진 하나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산발랏의 무리들이라는 외부의 적’(4)이 물러가자 이번에는 내부에서 원망이 터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원망을 낳았는가. 백성들은 흉년 때문에 먹을 곡식이 턱없이 부족하였다(3b). 그러자 더러는 자녀들까지 팔아 양식을 구한 모양이다(2,4-5a). 참으로 기가 막히고, 숨이 넘어갈만한 고통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 외부의 적을 방어하는 일도 모자라,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거기다가 이번에는 내부에서 문제가 터짐으로써 삶의 전 영역이 흔들리면서 무너지게 되어 버렸다.

백성들이 읽고 있는 자신들의 삶의 지평에 대한 관찰(한탄, 원망), 거기에 대한 느헤미야의 관찰은 같은 시각이다. 하지만 발생한 문제의 또 하나의 축인 귀족들과 민장들’(지도자들과 관리들)은 다른 시각에서 이를 방관하며 관망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또 하나의 꼭지점에 느헤미야가 자리한다. 과연 누가 이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누가 이를 풀어갈 것인가.

 

[2] 해 석(6-9)

느헤미야의 진단이다. 백성이 그들의 형제들을 원망(부르짖음) 소리가 느헤미야에게 들렸다. 그는 단순히 백성의 소리만을 듣는 수준에 있지 않았다. 그의 해석의 시각은 너희의 소행이 좋지 못하도다. 우리의 대적 이방 사람의 비방을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할 것이 아니냐.”(9)라는 부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왜 백성(성도)들로 하여금 불평을 하게 끔 한 사람(지도자)들의 소행이 옳지 못하는가?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9a).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의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9b). 그가 이와 같은 해석을 하게 된 신학적 배경은 모세오경(율법, 말씀)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해석은 성경이 한다. 때문에 묵상이 풍성해지고 부요해지려면 성경을 아는 지식이 쌓이고 충만해야 한다. 이것이 느헤미야가 이야기하는 것의 권위이고 분명한 증거가 되는 이유이다. 느헤미야는 원망의 답, 곧 해석을 율법에서 찾은 것이다.

 

유대인끼리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지 말라.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22.25)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23.19-20)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노예()로 팔지 말라.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바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25.39,42)

 

보이는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들의 심령 안에 회복되는 것 역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묵상하는 사람의 영적 균형감이다. 사실 어느 때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현실과 말씀의 두 세계(지평)는 항상 충돌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을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양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현실 선택(안주)이 있고, 말씀의 편에 서서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는 말씀 지향(결정)이 있다. 물론 적절하게 양쪽을 줄타기하면서 필요에 따라 양쪽을 두루 섭렵하는 실리주의형이나 인본주의형도 있지만 엄밀하게 보면 이 사람 역시 내세(來世)를 현세(現世)에 팔아먹고 사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3] 적 용(10-13)

말씀대로 살겠다는 생각과 결단과 고백! 얼마나 아름다운 아멘!’이요 응답인가.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느헤미야는 이 일의 결론을 이렇게 소개한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13b) 이게 묵상(QT)하는 삶의 진짜 멋이자 맛 아닐까. 이게 묵상하는 삶이다. 시작된 백성들 사이의 원망이라는 상황에 대한 관찰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는 바른 해석을 낳았고, 건강한 해석이 서로를 축복하는 건강한 아멘과 찬송이라는 적용을 이루었다. 이와같이 말씀묵상의 3대 축인 관찰 해석 적용이 균형 있게 밑그림을 그릴 때 느헤미야처럼 물 흐르듯 말씀의 지도와 인도를 따라가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적용이 내 안에 시작되고, 발견되고, 새롭게 추가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마침내 예루살렘 백성들의 원망’(1) 소리가 끝이 나고, 문제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아멘송’(찬송)이 들리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고, 그의 선하신 인도하심 앞에 찬양(아멘)하는 백성(성도)들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 말한 대로 행하였던 저들의 일상의 말씀묵상이 느껴진다. 이것이 말씀묵상이 주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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