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295주일 | 묵상론(05) – 묵상의 장애물2(눅24.13-49)

1295주일 | 24.13-49

묵상론(05) 묵상의 장애물(2)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 그리고 열한 제자들(24.13-49): 믿음 없음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중이다. 이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 그러니까 베드로가 친히 빈무덤을 보고 돌아온 그날에’(13a) 주님의 부활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저들과 동행하시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주님은 노중에서 일종의 <보행설교>를 대화식으로 하셨다. 그런데 이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주님을, 그러니까 자신들이 대화를 나누는 그분, 다름 아닌 부활하신 바로 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걸으며 말씀(설교)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다.

더 심각하다 싶은 것은, 무엇보다도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슬픈 빛을 띄고 주님의 설교(말씀)를 이렇게 나누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18b) 정작 누가 모르고 있는가. 바로 제자들 자신들이다. 그러니 묵상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하는 일이 뭘까요? 이들은 믿지도 않고, 일어난 사실만을 장황하게 관찰하고, 예수님을 꾸짖듯이 나누고, 결과적으로 그릇되게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19-24).

이 제자 둘을 통해 알 수 있는 묵상의 장애물들은 무엇인가.

 

[1] 25불신앙(믿음 없음)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본문 관찰은 잘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할 능력이 없다. 아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왜 그런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b) 그렇다면 묵상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묵상의 일차적인 장애물은 믿지도 않는 성경의 사실(말씀)들을 지식으로만 붙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 이것이 묵상의 장애물이다. 묵상은 성경의 사실들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믿지도 않으면서, 그렇기 때문에 믿음 밖에서 성경이 말하는 사실들을 지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묵상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들은 묵상의 장애물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고 계심에도 그 주님이 함께 하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두 제자와 같은 일은 지금도 성경을 읽는 자들에게서 일어나는 흔한 일들이다. 또한 이 일은 우리의 예배에서도 늘 일어나는 일이다.

건강한 묵상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이것이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 결국 믿음이 없으면 묵상은 단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씀을 알지도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27)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믿음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31a)기 전까지는 말씀과 묵상의 주인이신 주님을 발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묵상은 이 땅의 사건이라기보다는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하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묵상은 하늘의 세계가 열려서 그 말씀이 보이는 믿음의 영역이기에 그렇다.

 

[2] 49성령의 부재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49)

 

묵상의 또 다른 장애물은 49절의 빛 아래 드러난다. 말씀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해석하고, 적용하고, 그래서 건강한 묵상하는 자로 서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조명이라는 도우심이 필수적이다. 묵상은 우리가 연습하고,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그러니까 어떤 방법론을 습득하는 것만으로 다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묵상은 묵상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럼 누구인가. 성령님이시다. 이처럼 묵상의 3()관찰, 해석, 적용은 성령님의 풍성한 조명이 주어져야 한다.

묵상하는 사람은 모두가 다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묵상하는 일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더 풍성한 묵상을 향해 나아가면 갈수록, 묵상의 한계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더욱더 절감하게 된다. 때로 우리는 말씀 앞에 서서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묵상을 하면 더 겸손해지고, 더 낮아지고, 그럴수록 성령님의 은총을 사모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내가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들려고 하지만 이런 초보는 잠깐이고, ‘묵상은 내가 하나님께 붙들리는 가장 아름다운 영적인 위탁이다는 사실을 가슴 깊게 체험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묵상하는 사람은 장애물을 만나지만 하나님은 묵상하는 사람들의 장애물을 제거하신다. 이것을 알고 또한 믿어야 한다.

 

 

묵상하는 사람이 장애물이다.

 

세상의 일들은 물론 하루 아침에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면, 잘 배우고, 많이 경험하면 대부분 무리 없이 잘 진행된다. 그리고 어떤 수준이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또한 어떤 공식이 있거나, 방법이 있어서 그것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그런대로 평균 이상은 한다.

그러나 묵상은 묵상은 신앙과 삶의 전 영역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만나는 유기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만이라도 막혀 있으면 건강한 묵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을 관찰하는 수준이 높다고 해서 해석이 잘 되고, 그러면 적용이 기막히게 이루어지는 그런 일은 없다. 묵상의 장애물만을 극복하고 제거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묵상이 날개를 다는 게 아니다.

그래서 묵상의 최종적인 목표는 하나님은 누구신가?”이지 묵상을 통해서 내가 뭘 하고, 어떻게 하고, 언제 하고, 무엇을 하고, 말하자면 이런저런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 쌓는 그런 방법론이 아니다. 묵상은 세상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사는가를 알아가는 처세술이 아니다. 큐티(QT)는 미로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름길을 발견하려는 방편이 아니다. 묵상은 묵상하는 자신을 아주 고매하고 높은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만 하면 척척 알아내는 그런 알라딘의 램프가 아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비밀을 묵상을 통해 훔쳐내는 신기(神技)가 아니며,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오늘은 뭘 하지 말까,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주팔자(四柱八字)가 아니다. 결국은 묵상을 통해서 내가 세상에서 잘 살고, 하나님께 혼나지 않고, 더 많고 더 깊게 하늘의 뜻을 알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이 하늘의 것을 차지하는 그런 요술 방망이가 아니다.

묵상은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사건이다. 그래서 묵상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축복의 통로라 한다. 이것이 묵상하는 사람이 누리는 축복이다. 묵상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누리며 산다. 묵상하는 삶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도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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