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58주일 |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까?(요4.15-24)

158주일 | 4.15-24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까?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소서!”(15)

마침내 마음의 방향이 예수님 쪽이다: ‘야곱의 우물을 내려놓겠다. 진리에 대한 반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물통에 물 담아 우물을 떠났을 것이다. 결국 영적 목마름이자 갈급함이다. 지금 삶에 대한 한계를 인정한다: 주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을 주시지 않으면 나는 끝입니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19).

에서 남편으로의 대화 이동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하지만 주님은 아셨다, 여인이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야곱의 우물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지금 상태로는 생수를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생수의 신비는 여인이 16절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한다.

그러자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내 갈한 목마름의 인생을 해결해 줄 남편이 없습니다. 지금 있는 자 역시 목마름의 답이 아닙니다. 마침내 여인은 거짓의 옷, 위선의 옷, 다시 목마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가짜 옷을 벗었다.

이제 예수님 차례다: “말이 옳도다. 네 말이 참되도다!”(17b-18) 하지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가 걸린다. 그렇다면 다시 목마르지 않는 샘물은 이 문제와 연결되고 있다. 15절에 대한 예수님의 답이기 때문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20-24).

그리고서 예배(20). 왜 갑작스럽게 예배일까? 무엇보다 여인은 지금 있는 자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이것에 막혀 있어서다. 그래서 여인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꺼낸 게 예배다. 바로 구약의 제사다. 마침내 막혀있는 샘물이 흐르게 하는 것, 예수님과 분리됨을 치유되는 것을 놀랍게도 예배에서 찾고 있다.

21-24: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21a)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인가? 이것이 23-24절 말씀의 내용이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를 아셨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이러한 예배를 찾으신다(23). 예배가 목마르지 않는 생수다. 아멘이다.

그럼 예배는 무엇인가? 예수를 아는 것이다.

자신에게서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것이다.

  = 야곱의 우물(모세오경)

  = 남편(삶의 근거와 이유)

  = 제사(구약, 율법)

   

사마리아는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통로인 예배가 이미 형식화되었다. 여기일까(사마리아), 저기일까(예루살렘)... 여전히 구약이고, 동물을 잡아 드리는 제사다. 또한 야곱의 우물을 통해 육신의 목마름 정도 해결하는 수준이다. 메시야, 구세주요 그리스도가 지금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있다. 어찌하랴.

예배를 잃어버린 황무한 사마리아, 그 샘플(sample)이 바로 여인이다. 그녀는 온 몸이 병들었고, 그녀의 심령은 마치 사막의 모래처럼 갈기갈기 찢기고 상처난 영혼이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고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예배자로 서는 새로운 변화의 무대 앞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

영과 진리로 예배’(24)라는 말이 얼마나 오해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많은 경우 이 말을 예배의 태도, 자세, 마음가짐이라는 예배자(worshiper)의 몫으로 생각한다. , 예배자가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따라 예배의 승패가 있는 것으로 보아왔다. 그래서 종교적 행위(지극과 정성)를 다 해 예배를 해야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배는 예배자의 문제 이전에 예배를 받으시는 분, 예배의 주인이신 분, 즉 예배의 대상의 문제다.

, 이 생수는 누가 주시는가? 계속 읽어보자.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제목 날짜
552새벽 | 둘 다, 하지만 좋은 편을!(눅10.25-42) 2021.02.02
197수요 | 변화산 사건이 주는 교훈들1(막9.1-13) 2019.12.11
10새벽 ㅣ 다윗기도(대상17.16-27) 2019.07.04
108새벽 | 애굽 멸망가(滅亡歌): 슬피 부를 노래(겔32.1-16) 2019.08.30
375새벽 | 장로의 사명선언문을 주목하십시오(벧전5.1-4). (1) 2020.07.09
565새벽 | 열 모두 치유 vs 하나만이 하나님께 영광(눅17.11-19) 2021.02.22
540주일 | [02] 광야복음, 믿음에 심겨 여리고에서 꽃피다(수2.8-24). 2021.01.17
60새벽 | 너는 보내고, 나는 기도하고(살전3.1-13) 2019.07.04
82새벽 | 예루살렘: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겔16.1-14) 2019.08.01
219새벽 | 노아: 심판 vs 구원 그 사이에서(창6.1-22) 2020.01.08
135새벽 | 실로 성막시대와 7지파 분배(수18.1-10) 2019.09.30
214새벽 | 오직 주를 노래하라(시150.1-6). 2019.12.31
182새벽 | 때가 가까움이라!(계1.1-8) 2019.11.21
119수요 | 세례 요한의 죽음, 그 다음은?(막6.14-29) 2019.09.12
158주일 |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까?(요4.15-24) 2019.10.27
81새벽 | 예루살렘포도나무주식회사(겔15.1-8) 2019.07.31
204새벽 | 大바벨론 심판 vs 할렐루야 승리가(계18.21-19.10) 2019.12.19
127주일 | 요셉의 눈물(창42.14-25) 2019.09.22
54주일 |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1-21) 2019.07.04
153새벽 | 진리와 사랑 안에서(요이1.1-6) 2019.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