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새벽 | 계18.21-19.10
大바벨론 심판 vs 할렐루야 승리가
바벨론 최후의 날(18.20-24)
바벨론의 패망을 슬퍼하는 자들의 애가(哀歌, 18.9-19)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나님이 집행하시는 심판을 찬양하는 애가(愛歌)의 노래가 곧바로 이어진다(20-24). 마침내 세상은 슬퍼하는 자(18.8-19)와 즐거워하는 자(18.20, 19.1-10)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즐거워하는 무리들은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24)들이다.
한편 바벨론(로마)의 최후의 날은 ‘큰 맷돌 같은 돌’을 던지는 의식을 통해 바벨론이 이처럼 던져지게 될 것을 보여준다(21, 렘51.63-64 참조). 바벨론은 그야말로 죽음과 저주의 도성이 되고 만다(22-23, 렘25.9-10 참조). 하나님 없이, 그러면서 황제숭배에 배불렀던 풍요와 부요의 땅 바벨론(로마제국)이 이처럼 “하루 동안에”(18.8), 즉 ‘한 시간에’(18.17) 참담하게 몰락할 줄이야 당사자들도 몰랐다. 그렇다. 이제 ‘결코 다시’는 바벨론을 보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할렐루야 승리가(19.1-5)
어린양의 혼인잔치 예고(19.6-10)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2).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은 큰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외에 무엇이겠는가: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1b) 마침내 허다한 무리들로부터 다시금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6)는 통치권의 회복이 노래되고,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예고됨으로써(7) 절정을 맞는다.
이로써 계시록은 신부(어린양의 아내=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교회)의 승리를 내다본다(7-9 → 21.2,9). 구약이 하나님과 선택된 백성(이스라엘) 사이를 혼인 관계로 비유했다면(호2.16, 사54.6, 겔16.17), 신약은 어린양과 새 예루살렘(교회)을 혼인 관계로 보았다(마22.1-14, 25.1-13, 엡5.25). 보라. 이제 곧 영광 중의 영광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