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54주일 |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1-21)

54주일 | 창3.1-21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

•우리는 계속되는 설교에서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다. 아브라함, 이삭, 요셉이다. 수요일마다 마가복음을 읽어가는 중에 중풍병이 든 친구를 침대와 함께 예수님께로 나아온 친구들(막2.5), 그리고 나아만의 집에 수종 들던 히브리 무명의 어린 소녀도 있다.
그럼 이렇게 생각되지 않을까: ‘그렇지,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들이니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그 믿음을 사용하셔서 역사를 이루시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 때문에 믿음이 없거나, 약하거나, 그래서 마치 공부 못하는 학생이 선생님 앞에 당당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것 아닌가.
정말 하나님은 그런 분이신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이처럼 믿음에 잘 서 있는 사람들은 만나주시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도 관심 가져주시지 않으신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사람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 노아를 찾아 가사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알리시고, 이를 피할 길, 즉 방주를 만들어 심판을 넘어서도록 말씀하심으로 찾아오신다. 유다 웃시야 왕의 시대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에게 찾아오신다(암1.1). 바벨론 포로기 때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찾아오신다(겔1.1).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어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세례 요한에게 임하신다(눅3.2).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절망한다: ‘그럼 나 같은 자는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없다는 것인가.’ 그럼 결국 하나님의 찾아오심, 하나님의 은혜는 이들처럼 탁월하게 살아야만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정말 성경은 하나님의 심방을 받으려면 뭔가 특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아담아, 그래 너 지금 어디냐?
아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죄인을 찾아오신다. 역사는 여기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찾아오심에서 비로소 생명이 된다. 하나님은 누구 편인가? 죄인 편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분의 사랑은 죄인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거기서 사랑이 움트고, 시작되고, 흘러간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일 때 찾아오셨는가. 아니다. 그가 바울되기 이전, 사울이었을 때다. 그가 사울이었을 때,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을 때, 그러니까 십자가와 원수로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을 때, 기독교 반대편에 서서 예수와 복음과 십자가의 도를 거역하고 있을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이 그를 찾아 가신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9.4-5)
그뿐 아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실패자인 가인을 찾아 오신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 그랬음에도 예배자요 의인이요 동생인 아벨을 죽인 가인을 또 다시 찾아 오신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 네가 무엇을 하였으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하느니라 …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4.9-12)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시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아멘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게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하나님 아버지, 탕자인 나의 아버지 하나님!
얼마나 상심이 크시고, 아프셨을까. 당신이 만든 피조물이 하나님 주인을 배반하고 모든 창조 세계를 뒤죽박죽 만들어 버렸으니까.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과 비전과 놀라운 계획이 한 순간 깨어져 버렸고, 남은 것이라고는 깨어져 버린 인류와 죄 가운데 빠져버린 세상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일 수는 없으니까. 당신이 믿고 만든 피조물이기에 실패했어도 그를 버릴 수 없는... 에덴을 잘 관리하고, 좋았더라였을 때 뿐만 아니라 아담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세계가 죄로 물들어 버렸고,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과 좋음의 멜로디가 깨어졌다 할지라도 그렇게 만든 인간을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그렇잖은가. 못난 아들과 딸일지라도, 부끄러운 어머니와 아버지일지라고 품고 가야 하고,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배운 사랑의 또 다른 멜로디일 것이다.
예수님은 탕자의 아버지에게서 태초에 에덴을 찾아가신 하나님 아버지를 읽어낸다. 어쩌면 그날 그렇게 당신의 품을 떠난 아담이 탕자였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아버지 탕부는 그 못나디 못난 아들을 잊지 못하고 집 밖 저 멀리서 다시 귀향하는 아들을 보고 맞이한다. 지금 창세기 태초의 에덴에서 일어난 하나님을 향한 일류의 배신 앞에, 그랬음에도 하나님 탕부는 한 손에는 가죽옷을 들고 다른 한 손에서는 사랑을 들고 탕자 아담을 찾아가신다.
이보다 더 진하고,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사랑이 또 있을까.

     주님 없인 못살아
     1. 내 주님 없인 난 못살아 내 주님 없인 안 돼
        닻 없는 배처럼 흔들려 주님 없인 난 못살아

     2. 주 없이 소망도 없는 세상 길 나갔지만
        주 예수 나 위해 죽으사 나를 구원해 주셨네

     [후렴]
     예수 오 예수 당신은 아는가 우리들의 주를
     오 예수 오 예수 내 주님 없인 난 못살아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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