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375새벽 | 장로의 사명선언문을 주목하십시오(벧전5.1-4).

375새벽 | 벧전5.1-4

장로의 사명선언문을 주목하십시오.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 가운데서 장로의 사명을 감당하는 동역자들을 가리켜서 나와 함께장로된, 그러니까 같은 장로로서 편지하고 있다. 당시 장로와 목자(목사)와 감독은 거의 동의어(同義語, 20.17,28)로 쓰이고 있었다. 목자장은 주님이시기에(4a) 자신 역시 한 사람의 목자일 뿐임을, 그래서 목자가 목자에게 세 가지를 권면(부탁)하고 있다.

 

자원함으로 양을 치라(2a)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자는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돌보아야 한다. 사도는 나는 선한 목자라.”(요한복음 10) 말씀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시 주님으로부터 내 양을 치라!”(21.15,16,17)는 사명장을 받았을 때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떼를 돌보는 자로서 헌신하도록 언제나 자원하는 심령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기를 요청한다.

 

즐거운 뜻으로 목양하라(2b)

사역자들은 더러운 이득’(딤전3.8, 1.7,11)을 탐한 부도덕한 지도자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목양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기쁜 마음으로 양무리를 쳐야한다고 가르친다.

 

양무리의 본이 되라(3)

목자는 골목대장, 혹은 카우보이(cowboy), 그러니까 양떼를 지배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양()을 맡은 자다. 목자로서의 본이 되셨던 주님처럼 양들을 돌보고, 섬기고, 사랑하는 자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양들을 노리는 사악한 이리(사탄, ‘비방하는 자’, 2.12)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고 지키려면 그만큼 전인적인 실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목양을 빌미로 양들을 목자가 자기 마음대로 끌고 다니거나 명령하거나 지시하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물론 양들 역시 목자의 지도력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목자의 품을 떠난 양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목자는 양의 ’(examples)이 되어야 한다.

 

주님은 자신의 양 떼를 위해 재림하실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양무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양무리를 치는 목자인 장로는 청지기일 뿐이고 목자장은 주님이시다. 한편 사역자들은 고난의 증인이요 영광에 참여할 자이며,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자다(1b). 더 명백한 것은 하나님의 양무리’(2a)와 그들을 치는 목자로서의 구별에서 나타난다.

역시 중요한 다른 하나는, 모든 성도들이 다 거룩한 제사장’(만인제사장, 2.5,9)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양무리(‘거룩한 제사장’)들을 치는 목자인 감독(목사)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직분자들로 세워져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본질에 있어서는 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요 동일한 양()이지만 맡겨진 역할(role)은 각자의 소명과 은사를 따라 다르다는 얘기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목자(사역자)와 양(평신도)으로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신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목자로서의 사명을 다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직분만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무리의 본이 되는 것은 단지 푸른 초장과 쉴만 한 물가로 양들을 인도하는 것만이 아니기에 그렇다. 삶의 전 영역이 목자가 양을 위해 헌신하고 보여주어야 할 모범의 장(field)이라면 거기에 이르도록 끊임없는 성장과 성숙이 내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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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전서의 묵상을 머치는 5장에서 '양무리'를 마주하니 우리 교회가 더욱 은혜롭게 느껴진다. 이 서산을 기록하신 분이 어부 베드로인가? 성령의 감동으로 쓰셨음이 절절히 느껴진다.양무리교회를 섬기시느라 노심초사 애쓰시는 네분 장로님(목사님 포함)의 아름답고 충성된 사역을 위해 더욱 깨어 기도 해야겠다.교회가 건강해야 가정과 개인과 국가와 열방이 행복한 복을 받음이 확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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