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249주일 | 보아스 스타트(룻2.8-16)

249주일 | 2.8-16

보아스 스타트

 

룻기에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그런 장면이 없다. 그런데도 룻기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따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이처럼 살아가는 보아스를 통해 우리도 이처럼 살아가는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섭리 앞에 서 보도록 하자.

 

만남의 기준(8-10)

보아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룻과 결혼하라는 그런 말을 듣고 2막에 등장한 게 아니다. 보아스는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의 사람들과는 좀 달랐다. 그는 자기 소견에 옳은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신앙)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세속적인 기준을 가지고 룻을 살펴보지 않았다.

세속적인 기준은 사사기 식이다. 그것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다. 먼저, 상대방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본다. 여기에는 희생도, 헌신도, 수고도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세속적인 기준은 현재의 모습, 보이는 것이 기준이다. 그러니 잘 될 리가 없다.

만약 보아스가 이러한 기준을 가진 현대인이었다면 그는 결코 룻에게 말을 걸거나 가까이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아스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룻과 대화하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이것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이루어지고, 그래서 미처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 이유는 다음 11절에서 밝혀진다.

 

보아스 스타트(11-13)

룻은 모압을 정리하고 하나님께로 왔으나 가장 미천한 이삭줍기에서 시작한다(19.9-10). 특별하지 않다는 얘기다. 보아스란 이름의 뜻은 민첩’, ‘재빠름이다. 보아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괄시하지 않았다. 보아스는 사사시대임에도 자기 소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마음을 따라 살았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이 섭리로 인도하시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써 가신다. 이게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다.

사실 보아스는 아버지 살몬과 그의 어머니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너무나 잘 안다.- 기생 라합(Rahab)의 사이에서 태어났다(1.5). 창녀인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해야 할 땅인 여리고 성에 거주했으며, 믿음으로 여호수아의 두 정탐꾼을 숨겨 준 댓가로 이스라엘의 보호를 받았다(2.1- ). 보아스는 이미 그런 어머니에게서 탁월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목숨을 걸고 여리고 전투에서 살아 남은 라합의 신앙은 아들 보아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룻이 모압이라는 이방의 여인이라는 것보다, 목숨 걸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던 그녀의 신앙에서 자기 어머니 라합의 신앙을 보았을 것이다. 룻에게서 자신의 어머니 라합을 보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무너진 사사시대의 영적 토대를 다시 세우는 길임을 알았다.

자기 어머니 라합이 이스라엘과 아버지 살몬의 보호와 사랑을 받아, 그리하여 자신이 오늘 존재하게 된 것처럼 자신의 가까운 친척 나오미의 뒤를 따라 아무 것도 보장이 없는 베들레헴으로 찾아온 룻 또한 자기 어머니 라합처럼 보호 받아야 한다는 은혜를 보답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 보아스는 자신의 아버지 살몬이 라합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자신 또한 이방인 룻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차원 높은 신앙의 소유자였다. 보아스에게는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3.28)라고 하는 복음이 있었다. 이처럼 복음은 모든 장벽을 뛰어 넘는 능력이다.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12)

 

이처럼 철저히 은총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을 때, 아니 일원이 되려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 앞으로 빈 손 들고 회개하며 십자가 앞에 설 때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 다시 말하면 마치 룻기 1장의 룻처럼 교회(그리스도) 밖에 있던 어떤 사람이 룻기 2장의 룻처럼 교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떻게 그를 맞이해야 할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도 천국에 들어가 못하고,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주의 백성들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 복음을 위해 온 사람들에게 육신의 일을 손에 쥐게 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만남

보아스만 만나려 하지 말고 룻처럼 준비하라! 룻만 만나려 하지 말고 보아스처럼 살라! 우리의 관심은 보아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아스로 세워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들은 속사람을 보았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큼 상대방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 그럼 이제 우리도 룻과 보아스처럼 또 맞는 내일을 그냥 그렇게 묵묵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 된다. 일어나면 QT하고, 잠시 기도하고, 하루라는 일상을 바르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룻과 보아스가 가르쳐주는 영성이다.

이 삶은 특별하지 않다.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어떻게? 오직 주의 말씀과 지금 내가 듣고 알고 믿고 받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이것이 가장 큰 능력이다. 신앙을 따라 산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신앙은 평범하다. 그냥 날마다 살아가는 일상생활이다. 우리의 삶이 날마다 이벤트고, 사건이고, 뉴스고, 그래서 예측하기 어렵다면 얼마나 어려울까. 우리 룻과 보아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자. 그러다가 또 모이는 공동체로 부르시면 해처럼 밝은 모습으로 만나자. 룻기처럼 사는 삶, 단순하다는 얘기다.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부산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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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이렇게 해가 저물어 갑니다. 모두들 잘 도착하셨는지요. 몇십년 같은 일상이지만 ,,, 요즘은 돌아오는 걸음이 아쉽고 더 같이 있고 싶고 그런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잔잔히 삶이 예배가 되게하셔서가 기쁨이 넘쳐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식사는 맛나게 하셨나요? 일찍오셔서 무우를 볶고 쌀을 씻고 함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저 목사님께서는 한주간을 말씀밥을 맛나게 짓기위하여 주야로 묵상하시고 저희들은 그밥에 밥을 더하여 건강하고 따뜻한 음식을 드시게하기 위해 한주간을 고민했던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이 가슴을 두드립니다.
    보아스만 만나려 하지 말고 룻처럼 준비하라! 룻만 만나려 하지 말고 보아스처럼 살라!
    저의 삶에 잔잔히 부서짐을 느낍니다. 하나만 보고 살았습니다. 이젠 보아스와 룻을 같이보며 일상에서 적용을 해보려합니다. 믿음앞에 선다는것 앞으로 더 겸손히 삶이 조금 힘들더라도 이삭을 줍는 그 맘으로 다시 스타트해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줍는 그 자리에서 힘든길 돌아 교회로 말씀을 듣고자 달려가는 그 자리에서 역사하시고 일해가심을 느끼며 찬양과 감사함으로 다시 서봅니다.^^
    오늘 식사준비와 설것이 등 다 나열할 순 없지만 기쁨으로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머리엔 기억하겠습니다. 오랫만 지영이도 함께 예배함이 뭉클하기도 하고... 맛난 떡으로 입은 즐겁게 해준 방경한 아영집사님도 모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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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점심 보름맞이 밥... 잘 먹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마다 마당에서 손을 흔들 때면 늘 아쉽고 그랬습니다. 오늘도... ㅎ 어쩌면 멀리 있는 가족(자녀)이 집에 다니러 왔을 때는 참 좋은데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못네 아쉽고 서운하고 눈물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ㅎ 그래도 또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니 꾸욱 참고 주어진 시간 앞에 서곤 합니다.
    3일간 해운대제일교회에서 <피스메이커 지도자훈련>이 있어 며칠 다녀옵니다. 모두들 평안한 밤 되십시오. 그리고 또 내일도 어김없이 룻처럼 보아스처럼 일상의 삶을 튼실하게 살아보자고 기도손 모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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