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248주일 | 창세기에 심고, 출애굽기에서 거둔다(창50.22-26).

1248주일 | 50.22-26

창세기에 심고, 출애굽기에서 거둔다.

 

    창세기의 요셉: 110

    출애굽기의 요셉: 언약의 땅 가나안까지

 

이스라엘(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한 게 목적은 아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시작이자 출발이다. 여기에는 야곱의 12 아들들의 보이지 않는 창세기가 들어있다. 이것은 출애굽기에 가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실 인생은 보통 창세기에서 심고 거기에서 거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창세기에 심어서 먼 훗날 출애굽기에서 거두는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한 인생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인생시간표다. 하지만 모두의 인생이 다 그럴까. 이것이 요셉을 좀 더 특별하게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당대(當代): 창세기의 요셉 - 110

 

    [요셉연표1]

    17형들의 꿈을 해석하다.

                애굽의 노예로 팔리다.

    30바로의 꿈을 해석하다.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다.

    39- 곡식을 사려온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임을 알리다.

                아버지 야곱(130)22년만에 다시 만나다.

                야곱의 온 식구들이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이주하다.

  110애굽에서 죽다.

                언약의 성취를 유언(50.25): ‘약속의 땅에 내 해골을 가져가라.’

 

요셉은 나이가 되어 자연사하는 것으로 끝을 알리는 사람이 아니다. 창세기는 이 이야기를 하려고 기록된 성경이 아니다. 요셉은 다르게 산다. 애굽주의자로 살지 않았다. 그는 보이는 세상인 애굽을 따라 살지도 않았다. 요셉은 애굽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며 자신과 가족과 야곱의 후예들을 지켜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애굽의 부귀영화와 권력의 힘과 명예라는 인간적인 것을 의존하지 않는다. 애굽에서 잘 먹고, 잘 살았더라가 전부가 아님을 알았다. 애굽이 전부라면 애굽이 전성기여도 된다. 하지만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신 언약이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다. 이 소망이 창세기를 넘어 출애굽기를 바라보게 했다.

그렇다면 애굽이 희망이거나 만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요셉은 애굽이 주는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요셉으로 요셉되게 했을까? 하나님이다. 아주 단순하다. 17세의 소년으로서 꿈을 꾸었을 때에도 그 꿈을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었고, 그 꿈 때문에 결국 형들에 의해 팔리고 되고, 급기야 노예에서 죄수가 되어 감옥에 있을 때에도, 총리가 되어 부와 권력과 명예를 다 쥐고 살았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충분했다.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자신의 인생을 관통해가는 것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꿈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고, 그것만큼 바로 그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했던 것이다. 이것이 110세 인생의 마지막에 토해내는 유언과도 같은 고백에 들어있는 요셉의 신앙이다.

 

 

후대(後代): 출애굽기의 요셉 언약의 땅 가나안까지

 

    [요셉연표2]

    [창세기]

    ∙110애굽에서 죽을 때, 약속의 땅에 해골을 가져가라고 유언하다(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25)

        →

             [출애굽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1.8)

            ∙아브라함에서 시내산까지: 430년 후(15.1-21 [12.40]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13.19)

 

요셉 역시 그의 선조들처럼 약속의 땅, 그러니까 아브라함 언약에 대한 믿음을 따라 그 땅 가나안에 대한 유언을 남기고 애굽에서 110년 생애를 마무리한다(24). 그는 창세기에 자신의 육신을 묻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닌 하나님이 계획하신 또 하나의 창세기의 문이 열리면서 우리는 그것을 출애굽기라 읽는다.- 자신 역시 해골(흔적)이나마 약속의 땅에 묻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 역사에 모세가 참여한다(13.19). 요셉은 창세기에 심었고,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이를 거둔다. 요셉은 심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섭리와 역사를 따라 자라다가 마침내 모세에 의해 응답되고 있다. 요셉의 시대에 심은 소망이 드디어 모세의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창세기였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인간의 멸세기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창세기가 멸세기로 끝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죽은 가지의 뿌리 끝에 여자의 후손과 아브라함의 언약이라는 생명을 불어넣으신다. 그리고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그의 12 아들들을 통해 민족을 이루어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행해지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회복이라는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이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으나 다시 새로운 이스라엘을 통해 창세기의 비전과 꿈과 소망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이렇듯 창세기는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 우리는 그 새싹이 마침내 출애굽기에 움트는 것을 볼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가 진행되는 곳이 비록 약속의 땅이 아닌 이방의 애굽일지라도 그곳에서 멈추지 않아야 할 요셉의 날들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 한복판이 비록 우리의 삶의 무대일지라도 이곳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무엇을 말인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이것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요셉처럼 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110세에 죽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야 언젠가 하나님이 세우시는 모세를 통해 우리의 사명과 꿈과 소명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것에 가 있을 것 아니겠는가.

 

  

제목 날짜
1291-93새벽 | 신명기 11-18장, 시편 63-65편 2024.03.04
1290주일 | 묵상론(04) – 묵상의 장애물(1) 2024.03.02
1288새벽 | 신명기 1-2장, 시편 59편 2024.02.28
1286-87새벽 | 민수기 34-36장, 시편 57-58편 2024.02.26
1285주일 | 묵상론(03) – 느헤미야의 묵상(느5.1-13) 2024.02.24
1281-83새벽 | 민수기 15-21장, 시편 50-52편 2024.02.19
1280주일 | 묵상론(02) – 묵상이란 무엇인가?(엡4.13-16) 2024.02.18
1277-78새벽 | 민수기 1-4장, 시편 44-45편 2024.02.13
1276주일 | 묵상론(01) – 묵상(QT)이란 무엇인가?(수1.8-9) 2024.02.09
1272-74새벽 | 레위기 9-15장, 시편 36-38편 2024.02.04
1271주일 | 율법은 정죄하고, 복음은 품고(행15.12-21) 2024.02.03
1267-69새벽 | 출애굽기 28-35장, 시편 29-31편 2024.01.29
1267주일 | 은혜 안에 있는 해답(행15.1-11) 2024.01.27
1265-66새벽 | 출애굽기 16-21장, 시편 25-26편 2024.01.26
1263주일 | 주께 드리는 1차 선교보고서(행14.19-28) 2024.01.20
1259-61새벽 | 창 42-48장, 시 15-17편 2024.01.14
1258주일 | 지금은 누가복음의 선교처럼(눅8.1-3) 2024.01.13
1254-56새벽 | 창 24-30장, 시 8-10편 2024.01.08
1253주일 | 고난과 영광, 그 사이에서(행14.1-18) 2024.01.06
1250-51새벽 | 창 3-11장, 시 2-3장 202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