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143주일 | 사울, 빌립, 시몬: 나는 누구인가?(행8.1-13)

1143주일 | 8.1-13

사울, 빌립, 시몬: 나는 누구인가?

 

성령충만 그 이후에도, 이질적인 두 그림이 동시상영된다. 교회와 핍박하고 복음을 거절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사울이 그 한 쪽이고(교회 밖/A), 성령행전의 주역들인 성령충만한 사람들(120명의 성도들, 12제자, 7집사)이 다른 한 쪽이다(교회 안/B). 이 둘 사이의 긴장이 사도행전이 그려가는 그림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오히려 교회 안의 균열이자 흔들림이다. 무엇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만 A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그것이다(5.1-11). 이때 교회는 어찌되는가. 그럼에도 교회는 계속되는 핍박을 받게 되지만 그러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B쪽으로의 항해를 계속한다.

이런 분위기의 한 복판에 빌립 집사와 핍박자 사울이 서 있다. 한편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758절에서 교회(예수)의 대표 주자를 자임하며 사도행전과 교회의 무대에 입장한다. , 이들이 극(전도자)과 극(핍박자)의 길을 가는 가운데 그렇다면 교회는,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은 어찌 될 것인가. 핍박자 사울, 전도자 빌립 집사, 마술사에서 개종한 초신자(새가족) 시몬, 이 세 사람을 통해 알아보자.

 

 

스데반에서 사울로

 

사도행전의 부흥행전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부분이 하나 더 눈에 띈다(1-3). 핍박자 사울이다. 아마도 핍박자 사울은 스데반만 없으면 교회는 끝이다.”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를 죽이는 일에 참여하고, 그것도 부족해 계속해서 교회를 잔멸하기 시작한다(3, 7.58). 이처럼 핍박자 사울은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방해하는 선두에 서 있다. 이렇듯 교회는 사울이라는 암초를 만난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둘 중 하나다: 사울이라는 풍랑과 암초에 좌초될 것인가? 아니면 부흥의 항해를 계속할 것인가?

그런데 교회는 이 핍박 가운데서도 부흥행전을 이어간다. 스데반이 죽고 없는데도 말이다. 성령충만한 스데반은 죽었고, 교회를 박해하는 핍박자 사울이 활개를 치는데도 사도행전이라는 부흥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는다. 이로 보건데 교회는 악한 자들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이끄신다. 더 놀라운 것은 오히려 핍박 때문에 18절이 성취된다(1b 4-8).

교회는 순교하는 이름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도, 핍박이라는 고난이 교회 문지방을 넘나들어도, 핍박자가 나타나서 날뛰어도, 그래서 흩어지는 교회가 될지라도 전혀 흔들리거나 위축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4,8) 그렇다. 이처럼 교회가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사울만은 이 비밀을 아직 모르고 있다.

 

 

빌립에서 시몬으로

 

사도행전이 진행되면서 유대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6.7b), 그러니까 십자가의 복음에 응답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12a) 통해 마술사 시몬이 새사람(새가족, 새신자)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빌립을 통해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13)게 된다. 이렇듯 흑암의 권세 아래 있던 어둠의 세력들이 복음 앞에 굴복하기 시작한다. 빌립이 사마리아 전도를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귀신이 물러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치유되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었다(6-7).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몰랐을 때의 사마리아는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마술을 통해서 자신을 과시하며 허풍을 떠는 시몬이라는 사람을 두고서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0b)며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그를 따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것도 오랫동안이나 그랬다(11).

하지만 이것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 빌립의 복음전도에서였다(12). 이것이 사마리아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핵심이다. 마침내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았으니까 말이다(13). 복음의 빛은 이처럼 어두운 세력을 몰아낸다. 이렇듯 예루살렘교회는 핍박을 통한 흩어짐이라는 시련 앞에서도 사마리아 전도라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낸다. 이로써 우리의 인생과 신앙 여정에 들어있는 시련과 핍박은 나쁜 것이다라는 단순한 도식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찬송가 3732)

 

복음은 놀랍게도 핍박을 먹고 땅 끝을 향해 확장되고 있다(1.1 8.1 13.1). 이렇듯 핍박도 교회행전의 가는 길을 막지 못한다. 바꾸어 말하면, 핍박은 사도행전의 길을 여는 빛이다. 그랬기에 돌에 맞아 죽는 핍박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중단시키지 못한다. 본문 역시 1-3절로 방해를 받지만 그럼에도 4절 이하로 응답하는 것이 복음이요 교회다. 빌립은 핍박이라는 파도를 오히려 복음전파의 기회로 활용한다. 그는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것을 우물쭈물하거나, 또한 핍박이라는 환경을 피하기 위해 우회하지 않는다. 장애물을 핑계의 기회로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복음이 가는 길에 전적으로 순종한 것이다. 오직 복음을 위해서 말이다.

베드로는 감옥이라는(4-5),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순교라는(7), 빌립은 흩어짐이라는 핍박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결코 평안하거나 여유롭지 못하다. 사실 핍박과 고난은 모든 것을 마비시키고 혼돈에 빠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럴수록 복음만으로 살아가겠다는 증인들로 넘쳐난다. 이것이 교회의 신비다.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내가 죽으면 교회에 큰 손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거짓 증거하거나, 숨거나, 피하거나, 배도(背道)하지 않는다. 누구 때문이라고 탓하는 일도 없다. 나는 이렇게 충성하는데 너는 뭐하느냐며 도토리 키재기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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