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250새벽 | 이삭.에서 vs 리브가.야곱: 그렇다면 하나님은?(창27.1-14)

250새벽 | 27.1-14

이삭.에서 vs 리브가.야곱: 그렇다면 하나님은?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

      “나로 죽기 전에 마음껏 축복하게 하라!”(4b)

   

부자(父子) 사이의 축복을 잠시 살펴보자. 아버지 데라는 아들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한 이야기가 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는다(12.3, 13.14-17; 15, 17-18, 21-22, 24장 참고).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 역시 이삭을 축복하는 장면이 소개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는 장면에서 하나님이 이삭을 축복하는 것에서 볼 때 그렇다(22.18). 그런데 이삭과 그의 아들들(에서와 야곱) 사이로 넘어오면서 장자의 명분’(25.31-34)에서 뭔가가 암시되는 듯하더니, 급기야 이삭은 장자 에서에게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4b)는 제안을 한다.

이 부분이 창세기의 흐름에서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니까 아버지 아브라함도, 이삭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선언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삭의 아들에게도 이 흐름은 동일하다. 하나님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게 수태고지를 통해 이미 두 아들 중 차남에게 축복하기로 작정하셨다(25.23b).

이 사실을 이삭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삭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신을 통해서 장남 에서를 축복함으로써 차남 야곱을 축복하겠다 하셨던 하나님의 계획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사실상의 항명(抗命)이다. , 과연 이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부모의 마음

이삭과 리브가는 앞서 태중에 두 아들이 있을 때 수태고지를 통해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b)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러는 것일까. 두 가지 가능성이다. 하나는, 아마도 부모는 아들들에게 수태고지(25.23b)의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은 듯하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로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아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모리아산으로 올랐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야곱(작은 자)을 축복하신다고 하셨으니 자신은 아비로서 에서(큰 자)를 축복하고자는 마음을 가졌을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항명하겠다는 게 아니라 잘 될 자식은 잘 되는대로, 그러나 그러지 못할 자식은 어떻게든 부모가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자 하는 심정이었을 것 같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부모든, 자신이든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 주인이 아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을 이끄시는 자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수태고지(25.23b)가 갖는 위치이자 창세기 기자가 전하고자 하는 신학이다. 하나님은 친히 이를 분명히 에서와 야곱의 부모(이삭과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 그럼 하나님인가 아니면 아들을 축복하는 아버지 이삭인가.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기반으로 삼아 자신의 노력과 힘과 지혜를 더해 결국 복을 만들어내는가.

어떻든 부모된 심정에서 이삭과 리브가처럼 자식을 품고 기도하게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적 은혜 안에 있기에,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주의 자비와 긍휼을 의지하고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 섭리와 인도하심에 반항(저항, 불순종)하거나 불신앙하지 않도록... 탐욕과 욕망과 욕심과 그릇된 부모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과 대립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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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뜻은 크고도 오묘하다. 하나님 앞에서 '큰자'는 어떤 의미일까?
    먼저 태어나 육신의 세월이 많아서? 가진 것이 많고 권력이 높아서?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어서? 믿음의 연수가 길어서?
    이 아침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 귀에 쟁쟁하고 마음에 깊이 박힌다.
    믿음의 연수가 짧고 말씀에 대한 이해가 더딜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 주님의 말씀과 명려에 순종하는 자,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길로 걷는 자....
    주님! 이 시간 나와 우리 자녀들과 양무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 붙들린 자로 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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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QT하다’로 초대해 주시는 하나님!
    창세기의 사람들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
    은혜와 축복이 주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다시 깨우치신다.
    감사하다.
    같은 말씀을 함께 읽고, 깨닫고,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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