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237새벽 | 롯 에피소드: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창19.24-38)

237새벽 | 19.24-38

롯 에피소드: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2.7-8)

  

소돔 심판(24-28): “아브라함을 생각하사”(29)

구약의 롯(11.27-19.38)을 읽어왔기에 신약의 롯(벧후2.7-8)에 대해서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의 또 다른 상징이다(29.23, 32.32; 1.9, 3.9; 23.14, 49.18; 4.11; 10.15, 11.23; 10.12, 17.26-32). 그렇기에 그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는 롯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 무엇이 롯과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도록 했을까.

먼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29). 그의 중보기도 장면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소돔에 의인이 하나도 없지 않았다. 심판이 집행되기 직전에 롯의 가족을 구원을 받는다. 둘째는 베드로후서 27-8절이다. 물론 딸들을 천사들 대신에 소돔의 사람들에게 내어주겠다는 제안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은 부분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두 딸들과의 사이에서 모압과 암몬 족속이 시작되는 부분 역시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징계로부터 벗어난다. ‘의로운롯을 말이다.

 

모압과 암몬(30-38)

해체되어가는 롯의 가족들이 마치 앙상한 가지처럼 측은해 보인다.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으나, 그러나 언약의 중심부에서 이탈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우산 안에 머물도록 초대를 받았으나 점점 아브라함과 멀어지고 있다. 무엇이 아브라함과 동선에서 움직이던 롯을 이처럼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아버지,

두 딸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8)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16a)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17-19)

저 성읍으로 도망하게 하소서.”(20)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30a)

굴에 거하였더니”(30b) - 아브라함을 떠나기 이전에(13.14 참조) 롯은 소유가 많아서 아브람의 목자들과 다투기까지 했었다(13.6-7). 그러나 그는 지금 빈손으로 동굴에서 생존에 급급할 처지에 놓여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만큼 그 은혜와 복으로부터 밀러나고 있다.

깨닫지 못하였더라.”(33,35) - 술을 많이 먹은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롯은 영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일은 벌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딸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은 롯을 보라.

어머니, 롯의 아내(17):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26, 17.32 참조)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 “농담으로 여겼더라.”(14b)

두 딸들: “아버지와 동침하니라.”(33,35) - 소돔 사람들은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였다. 반면에 롯의 딸들은 근친상간을 비밀리에 수행한다. 롯은 딸이자 아내인 두 여자와, 아들이자 손자인 두 아들을 얻게 되는 실로 기막힌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다. 바꿔 말하면 딸들은 롯이 아버지이자 남편이 된 셈이고, 그 딸들이 낳은 모압과 압몬은 롯의 손자이자 아들인, 그야말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의인의 가문(벧후2.7-8)에 일어난 일이다는 점이 충격이다.

소돔 사람들(5b):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25)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이야기가 주류다. 이 이야기가 굵게 흘러가는 중에 그 사이사이에 이스마엘(17.18), (소돔)이 지류처럼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과연 이 두 이야기가 교차하며 아브라함행전에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동일하게 흔들리고 휘청거린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고, 롯은 조카다. 핵심은 이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 머무는 치열한 영적전쟁(삽바싸움)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들(이스마엘 & )은 모두 언약으로부터 점차 멀어진다. 무엇이 이들의 생애를 이처럼 전혀 다른 그림으로 그려져 가게 하는가? 이것이 창세기 독자들이 놓치지 않아야 하는 묵상의 아이콘이다.

아브라함의 생애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에 온 때가 그의 나이 75세였다(12.4). 그리고 소돔이 멸망할 때가 아브라함의 나이 99세다(17.1- ). 그렇다면 거의 사반세기, 25년여 시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의 인생은 극명하게 나누인다. 이것이 롯의 생애에, 동시에 아브라함의 일생에 들어있는 비밀이라면 비밀이다.

아브라함 역시 흔들리는 시간들을 지나왔지만 99세의 나이에 아들 이삭을 약속받는 당당한 사람으로 창세가의 정거장을 지나고 있다. 반면에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본토를 떠나 가나안에 왔고, 아브라함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안에 있었지만 그의 인생 말년은 참으로 비참하고 슬픈 여정으로 몰락하고 있다. 롯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세상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생의 수레를 굴려왔다. 이것이 화근이다. 그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천사의 명령보다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마저 자기의 뜻을 관철시킬 만큼 자아가 강한 사람이다. 그 결과 그야말로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부도난 인생이 되고 말았다. 주식회사 롯은 이렇게 그 문을 닫고 만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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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항상 우리를 생각하시고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을 주시어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향해 나아가는 주의 백성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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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지만, 동일하게 의로운 믿음의 사람이지만... 조금씩 다른 길을 가더니 끝에서는 정말 다른 삻을 사는 아브라함과 롯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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