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242주일 | 열일곱살 요셉, 감사합니다(창37.1-11).

242주일 | 37.1-11

열일곱살 요셉, 감사합니다.

   

야곱과 요셉 17년에 비로소 피어난 꿈

요셉이 17세 때, 어느 날 꿈을 꾼다. 12 아들 중에 뭔가 하나님 쪽으로 연결된 첫 이야기다. 예사롭지 않은 꿈이다. 이것이 17세 소년으로 창세기 무대에 등장하는 요셉을 주목하게 되는 희미한 불빛이다.

요셉은 17년이라는 비교적 긴 침묵을 깨고 17살이 넘어서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 앞에서 꿈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셉은 지금 이 두 꿈에서 자신과 형제들을 정확하게 구분(구별)하여 읽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무엇을 말하는 꿈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당신들의 단내 단을 이처럼 명쾌(명확)하게 보고, 또 해석해 낼 수 있었을까? 이것이 17년에 들어있는 요셉의 비밀이다.

그 옛날 아버지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 밧단아람으로 가는 길목인 벧엘에서 꿈을 꾼 적이 있다(28.10- ).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다. 이처럼 꿈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요셉 역시 그가 꿈을 꾼 것은 예사롭지 않다. 더 놀라운 것은 요셉이 그가 꾼 꿈을 해석하고 있음이다. 결국 요셉은 다른 형들과 달리 하나님께로 좀 더 가까이 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다른 그 어떤 아들들이 아닌 요셉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환경과 상황] 그럼에도 요셉은 17년을 어떻게 채웠을까?

    어머니 라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고 죽었다.

    하나님의 꿈을 이야기해도 미워하고 시기하는 게 형들의 신앙적 태도다.

    동생인 요셉을 돈을 받고 인신매매한다.

    형들은 하나 둘 장자권으로부터 멀어진다.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 아버지 야곱에게서 보여지는 하나님을 향한 모습이 없다.

    야곱의 12 아들들의 대()에서 아직 하나님과 연결된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 이런 가정, 아버지, 형제들 안에서 요셉이 나왔다.

            그럼 희망이다: 우리의 17년에서도 요셉이 자라고 있는가?

   

히스기야와 므낫세 15년 안에 함께 자라난 12년의 은혜

열왕기하 18-20장에 유다 왕 히스기야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25세에 왕이 되어 왕위 14년인 39세에 죽을 병에 든다. 히스기야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든 것은 앗수르(산헤립)와의 전쟁 무렵이다. 특히나 히스기야 4년에 앗수르가 사마리아를 에워싸기 시작하더니 히스기야 6(북왕국 호세아 9)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였고(18.9-10), 그러고서 히스기야 14년에 다시 앗수르가 유다까지 침입해 들어온 때였다(18.13). 문제는 왕은 병에 들어 죽어가고 있으나 뒤를 이어 왕이 될 므낫세도 태어나지 않은(21.1), 그야말로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은 바로 그 때에’(20.1a).

놀랍게도 히스기야의 기도는 즉각적으로 응답된다(20.4). 15년을 더 산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 히스기야가 15년의 생애를 연장 받은 후에 므낫세가 태어난다(21.1; 20.6). ,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그런데 므낫세의 모습은 영 아니다. 이러면 안 된다. 지금이 어느 땐가. 위쪽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버지 대()에서 멸망하여 이방으로 흩어졌고, 사마리아에는 이방에서 이주해 온 자들이 토해내는 상상할 수 없는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는 그런 때다.

 

    [환경과 상황]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실패하면 므낫세가 나온다.

    아버지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온 몸으로 경외하고 섬긴 기도의 사람이다.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졌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왕으로 세워질 세자였다.

    아버지 히스기야로부터 모든 것을 다 이어 받았다.

       ➜ 이처럼 훌륭한 유다 왕가의 가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히스기야 같은 선왕(善王)에게서도 악한 므낫세가 나올 수 있다.

   

요셉인가, 므낫세인가

산산히 부서진 가정에서, 어머니 나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고 죽었으니 그 세월이 얼마나 힘들고 서럽고 외로웠을 것이고, 한 지붕 네 식구이자 10 vs 2(1)로 나누어진 가정에서 살아온 17년이었으니 뭐 볼 게 있을까 싶은 요셉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꿈꾸며 하늘 향해 비상한다. 야곱의 가정교회는 요셉을 통해 세워져 간다.

반면에 모든 것을 다 가진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이고, 바로 이어서 왕위에 오를 세자인 므낫세였다. 아버지 히스기야의 생명이 하루 이틀 줄어갈수록 아들 므낫세의 왕위는 조금씩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그런 아들이었다. 그 아버지의 영적인 신앙 유산은 견고하고 생생한 삶 그 자체였다. 그런데 선대의 영광이 후대에 계승되지 못하고 남왕국 유다라는 교회는 이처럼 쇠락해 가고 희망을 잃어간다. 15년이라는 황금 세월을 다음세대로 잇는데 실패한다. 히스기야 15년만 좋았던 것이다.

   

요셉은 17년이라는 황무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므낫세는 최고와 최상의 환경이었지만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진다. 므낫세는 12세라는 어린 나이, 그러니까 처음부터 하나님을 버리고 만다. 우리는 지금 주어진 시간들을 므낫세처럼이 아니라, 요셉처럼 써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다. 요셉처럼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며 이루어내는 교회여야 한다. 야곱과 히스기야라는 선대에 이루어 놓은 영광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이어갈 다음세대가 므낫세처럼 혼돈과 실패와 고통과 눈물로 추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품에서 므낫세를 키워내고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 받아낸 히스기야의 15년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것을 다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내주고 만다고? 안 된다. 그렇게 미래가 와서는 안 된다. 우리가 써가는 교회의 현재와 미래도 마찬가지다.

열여덟살 양무리교회가 주께 드릴 예물은 무엇일까: 감사합니다! 열일곱살 요셉처럼이어야 하고, 그렇게 이어지는 역사여야 한다. 오늘은 히스기야처럼이었으나 내일은 므낫세처럼은 안 된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우리가 받아놓은 달란트다. 다시 주님이 찾으시는 날이 올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오늘 그렇게 18주년을 감사로 맞는다. 오늘 주께서 우리 모두를 요셉이라 받아주시기를 축복한다.

 

*[예배설교] -> 주일설교나 유튜브(김충만 목사, 부산 양무리교회 검색)로 가시면 설교를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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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주년을 기념하며 기도로 인내하며 공동체를 이루어나가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하나하나 다듬어지고 세워지는 양무리교회의 모습에 작은 돌 하나를 세워 더 튼튼하도록 순종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요셉처럼 나도 그런 자가 되기를 꿈꾸며 한 주를 살아갑니다.
    어제는 김명길 집사님의 기도로 예배를 축복했습니다. 중심을 보았고 처음이라 긴장도 했을텐데 기도로 준비하셨을 그 맘을 축복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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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년을 묵묵히 교회를 섬긴 성도들의 기도와 눈물이 흐르는 곳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도 그렇게 요셉처럼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의 섬김도 그렇게 사용해 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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