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노트

1311주일 | 아브라함, 말씀에서 이삭의 부활을 믿다(히11.17-19).

1311주일 | 11.17-19

아브라함, 말씀에서 이삭의 부활을 믿다.

 

    “아브라함은 시험(test)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은 100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이를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해결해 가는가.

 

 

1. 아브라함, 아삭을 향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다.

     아브라함의 믿음: 모리아산으로 아들 이삭과 함께 오르다

  

[아브라함과 이삭, 이들 부자(父子)의 비밀]: 말씀(하나님)생각하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12.2a, 75)

      → 무자(無子, 15) - A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2).

                                      G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4).

        → 이스마엘 출생(16:15-16, 86): 아브라함 + 하갈

            A[99]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7.18)

            G 아니라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17.19)

          → 득남(得男, 21.1- , 100): 아브라함 + 사라

            → G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2)

               ➜ 3(4): 모리아산으로 가는 길

 

하나님께서 주신 답이 이 말씀이다: “아니라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17.19)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물론이고 우리도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 무엇을 말인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난 아들, 그가 상속자이자, 또한 무엇인가? , 아브라함에게 하신 모든 말씀, 곧 복, 언약(약속),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한 후손, 그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이 주어질 것에 대한 약속, 무엇보다 여자의 후손’(3.15)이 태어나는 메시아의 가계라는, 그러니까 이를 위해 창세기 12장부터 지금 22장까지 이르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서 누구로 말미암아 성취된다고 하시는가? , 바로 독자 이삭이다. 이것이 이삭이 가지는 독특한 지위이자 위치다.

아브라함은 두 갈림길에서 생각했다. 하나님이 명하신 명령을 감히 누가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동시에 그렇다면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면 언약(약속)-“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18)- 또 어찌되는 것인가. 그는 3일 길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1117-19절에서 이야기하는 그대로다.

 

 

2. 아브라함,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생각하다.

     아브라함의 순종: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다.

 

모리아산에 가까이 이를수록 아들의 죽음이 가까워진다. 하나님이 분명 엘리에셀도 아니요(15.2), 이스마엘도 아닌(17.18-19), 마침내 약속의 후사인 아들 이삭을 주셨는데 듣도 보도 못한 인간 제물(제사)’을 명하신 것이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3일 길... 그게 모리아산으로 가는 길에 들어있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생각 신앙이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기자의 증거(17-19)를 들어보자.

여기서 중요한 신앙적 용어 하나가 있다. 어떤 단어인가? 생각하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 이스마엘, 이삭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상속자가 누구인지 생각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누구로부터 주어진 말씀인가를 생각한다. 그랬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요 기초요 뿌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생각이다. 이 생각이 그의 믿음의 기초다. 이것이 자신을 믿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하신 명령을 이루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되심 사이에 한치의 오차나 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믿었고 확신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믿음)가 있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 창고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나님의 말씀에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약속, 명령)을 넣어서 생각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말씀에서 답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브라함은 믿었다. 말씀이신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신뢰하고 믿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고, 사라에게서 난 자와 언약을 맺을 것이라는 말씀을 이룰 아들 이삭의 손을 잡고 모리아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일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생각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똑같이 3일 길이라는 하나님의 테스트, 그러니까 시험을 받지만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번제로 드리고, 또한 사라에게서 난 자와 언약을 맺을 것이라는 말씀을 이룰 아들 아삭의 손을 잡고 모리아산을 내려오는 부활을 경험하는 일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답은 매우 단순하고 간결하다. 말씀 안에 부활이 있고, 믿음 안에 다시 살리시는 일이 있고, 순종 안에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는 기적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부활은 예수님에게만 일어나는 유일한 기적이 아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이를 생각과 말씀과 순종을 통해 부활의 영광을 맞이한다. 그러면 우리도 우리의 모리아산으로 가는 인생길에서 늘 새롭게 부활의 은혜를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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